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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인터뷰] 지현우 “‘도둑님’ 종영, 꿈에서 깬 듯…올바른 길 가고파”

배우 지현우가 14년차 배우의 내공을 증명했다. MBC가 총파업을 겪는 상황에서도 50부작의 드라마를 훌륭히 이끌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20대 초반 연기에 발을 들인 그는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이도 성숙해졌다. 작품을 고르는 눈도, 연기를 하는 태도도, 동료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서도 능숙함이 묻어나왔다.

‘도둑놈 도둑님’은 대한민국을 조종하는 기득권 세력에 치명타를 입히는 도둑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통쾌하게 다룬 드라마. 지난 5일 13.4%(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시청률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지현우는 극 중 변호사와 도둑 J를 오가며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였다.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지현우와 만나 MBC 주말드라마 ‘도둑놈 도둑님’(극본 손영목 차이영, 연출 오경훈 장준호)에 대한 솔직한 소회를 들었다.

/사진=드림티엔터테인먼트




50부작 드라마를 촬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장돌목이라는 인물이 복수를 위해 달리는 만큼 치열하게 또 예민하게 견뎌온 지난 시간이었다. 지현우는 “꿈에서 깬 건가”하는 느낌이 든다고 할 정도로 아직 평화로운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작품은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았다고.

“농담 삼아 작품 하나 끝낼 때마다 늙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확실히 면역력이 떨어진다. 우는 장면이 많았는데 중간에 한번 오열한 후 30회 중반부터는 눈 떨림도 오더라. 워낙 클로즈업이 많아 자칫하면 큰일 나겠다 싶어 약도 챙겨먹었다. 그러다 보니 더 예민해진 것도 있고.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스크래치를 주게 됐다.”

지현우의 말대로다. 미처 알지 못했던 과거의 일, 부모님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면서 장돌목은 울고 또 울었다. 대의를 위해 활약하는 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내내 안고 있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멜로를 놓칠 수는 없었다. 수사관 강소주(서현 분)와 설레는 케미도 자아내야 했다. 어두움과 밝음을 순간마다 오가는 연기였다.

“드라마라는 게 어쨌든 인생의 엑기스만 모아놓은 거다. 그 안에서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우울한 것을 다 표현해야 하니까. 그래서 쉴 때 충전을 제대로 안 하거나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회복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다. 테크닉적으로 그 순간에만 몰입하는 배우도 있을 거고, 역할처럼 살아보고 겪어야 하는 배우도 있을 텐데 저는 후자다.”

그가 악역을 맡는 것이 “무섭다”고 표현한 이유다. 계속해서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고 어두운 연기를 하다보면 그것이 본인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 역할에 온전히 몰입하기를 원하는 만큼 스스로를 달달볶는 스타일이다. ‘도둑놈 도둑님’은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났기에 그래도 전작 ‘송곳’보다는 덜 아플 수 있었다.

긴 드라마를 무사히 마무리하기 위해서 배우들의 호흡도 중요했다. 일주일에 영화 한 편을 찍어내야 하는데다 그 주에 대본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거의 대사만 외우고 즉흥연기를 하는 식이었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가족극과는 다르기 때문에 ‘질리지 않는’ 연기를 하는 게 필요했다. 시청자들이 연기를 똑같이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상대를 최대한 이용했다고.

“김지훈 형은 호흡도 좋았고 의지가 많이 됐다. 신경을 못 쓰는 부분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저는 전반적으로 출연하는 배우들과 다 붙어야 했다. 그러다 지쳤을 때 형에게 기대기도 했다. 웬만해서는 남자들끼리 마주보며 우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런데 형과는 눈을 마주치면서 울 수 있었다. 전에도 호흡을 맞췄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 부분이 좋았다.”

/사진=드림티엔터테인먼트


멜로 호흡을 맞춘 서현에 대해서는 “순수하고 성실한 친구”라며 칭찬부터 꺼냈다.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본인이 연기 좀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색깔만 고집하는 배우가 있는 반면, 서현은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덕분에 같이 순수해지는 느낌까지 받아 연기하면서 좋았단다. 서현이 7살 연하인지라 지현우가 리드하는 편이었다.

“감독님이 창작을 많이 요구하셔서 서현 씨와 그런 부분을 맞추기도 했다. 서현 씨가 확실히 연애를 많이 안 해봤다는 것을 느꼈다. 둘 다 모태솔로 설정인데, 능숙하지 않으니 역할에 더 어울려서 좋았다. 저는 의견을 많이 물어보는 타입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있으면 어떻게 하고 싶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면서 역할과 일치하는 지점을 뽑아내려 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도둑놈 도둑님’은 주말극이라면 으레 겪는 ‘막장’ 우려는 가뿐하게 씻었다. 불륜이나 출생의 비밀 등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회의 악으로 자리 잡은 기득권 세력에 대한 응징이 주를 이룬 덕분이었다. 다만 총파업과 겹치며 아쉬움은 남았다. 지현우는 현장 상황에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고민도 들었다고.



“세트 촬영을 하는데 거의 한 주마다 카메라 감독님이 바뀌셨다. 아무래도 첫 회부터 36회까지 쭉 호흡을 맞추고 애착을 가지셨던 분들과 비교하면 작품에 대한 애정이 크지는 않으셨다. 시간적인 면에도 쫓기면서 더 퀄리티를 높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지난 2003년 KBS 2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지현우는 KBS2 ‘올드미스 다이어리’(2004)로 연하남 이미지를 얻으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MBC ‘메리대구 공방전’(2007), SBS ‘달콤한 나의 도시’(2008), tvN ‘인현왕후의 남자’(2012) 등에 출연하며 로맨틱 코미디 연기를 펼쳤다. 제대 후에는 MBC ‘앵그리 맘’(2015), SBS ‘원티드’(2016), JTBC ‘송곳’(2015) 등에 출연하며 보다 사회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20대와 30대의 연기에는 깊이감의 차이, 태도의 차이가 있다. 예전에도 열심히는 했지만 예전에는 3~4번 대본을 봤다면 지금은 시간이 날 때마다 본다. 20대에는 자신감과 패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1차원적이었다. 못 보겠더라(웃음). 아무래도 전역하고부터 달라졌다. 특히 ‘송곳’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더 무겁게 마음을 먹었다.”

‘송곳’은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원작 팬의 충성도도 높은데다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김석윤 PD를 12년 만에 만나는 것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촬영 환경도 너무나 좋았다. 대본이 8부까지 나와 있었고, 촬영도 방송 두 달 전부터 시작했다.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줬는데 연기를 못한다면 정말 핑계를 댈 수가 없을 것 같았다고.

/사진=드림티엔터테인먼트


“내레이션이 많았는데 찌르면 툭 나올 것처럼 연습했다. 노조 파업 현장에도 찾아다녔다. 저 분들의 표정이 어떤지, 어떤 것이 힘든 건지 관찰하고 연기를 했다. ‘송곳’은 그래서 현실적이었다. 너무 현실적이라 보기 힘들다는 분도 하실 정도다. 사실 그런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고 나니 이후 작품에서 더 연기에 대한 아쉬움이 남게 됐다.”

그러면서 지현우는 “반사전 제작만 돼도 좋을 것 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어찌됐든 방송이 나가면 욕먹는 것은 배우의 몫이니 더 철저히 준비하고 연기하는 것에 스트레스와 집착도 생겼다고. 대사만 안 틀리면 넘어가는 현장에 속상하기도 했단다. 연기 욕심을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 충분히 내보일 수 있는 고민과 불만이다.

“그래도 돌아보면 다 필요한 작품이었다. 그것들이 토대가 돼서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철 없는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진중하게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도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좋아해준 내 색깔에 대한 고민과 앞으로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인들도 계속 치고 올라오는데 중간자의 입장에서 올바르게 배우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지현우가 말한 ‘중간자의 입장’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과 자리를 잡은 선배들 사이 그 어딘가의 입장이다. 앞서 ‘송곳’에서 지현우의 아역을 맡았던 이서원은 공중파에서 어엿한 주연 자리를 꿰차게 됐다. 세대 교체하는 분위기에서 지현우가 직시해야할 점이 분명히 있는 것.

“그러니까 더 잘해야 되는 것 같다. 더 잘해야 이쪽에서 일할 수 있을 테니. 까딱 방심했다가는 이제는 용서가 안 되는 나이다. 서원이 같은 경우에는 못해도 ‘귀엽잖아’ 이게 된다. 저도 그런 시기를 겪어왔고. 이제는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있다.”

20대, 로맨스를 주로 하던 시절 지현우라는 이름 앞에 연하남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30대부터는 사회적인 문제작에서 정의로운 역할을 하면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현우가 보기에, 좋은 배우로서 연기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런 식으로 계속 작품 영역을 넓히면서 고정적인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싶다. 이런 것도 했고, 저런 것도 했으니까 새로운 이 역할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도록 연기를 해나가고 싶다. 감독이나 작가 등 선택하는 사람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창작에 대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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