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이 지난 22일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달 국빈 방문 형식으로 중국을 방문해 한중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을 확정했지만 중국이 여전히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압박하고 있어 본격적인 양국 관계 회복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따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더해 중국식 외교에 끌려만 다니다가는 대통령이 중국까지 찾아가고도 외교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3일 베이징 포시즌호텔에서 베이징 특파원단 간담회를 열고 전날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 대해 설명했다. 강 장관은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입장을 재확인했다”며 “모든 외교수단을 통해 북한의 도발 중단을 지속시키는 등 안정적인 한반도 상황 관리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방중 전 재중 한국기업 등의 어려움을 해소해달라는 우리 측 요구와 관련해서는 “왕이 부장이 (중국의) 기존 입장을 다시 표명하고 한중 양국 제반 분야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처를 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상회담 사전 조율을 위해 양국 외교 장관이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또다시 의도적으로 사드 문제를 언급함에 따라 한중 외교가 결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은 더 커졌다. 왕 부장은 외교장관회담에서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가입하지 않고 한국에 임시 배치되는 사드가 중국의 안전과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는데 중국은 이를 중시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언론들도 왕 부장의 발언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한국을 압박하는 중국 정부를 측면 지원했다. 인민일보는 양국의 사드 합의와 관련해 ‘3불(不)’ 입장을 거론하며 “중국의 사드 반대에 대한 입장은 일관된다”면서 “양국 관계의 장애물을 뛰어넘느냐 마느냐는 한국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3불 입장은 한국이 사드 추가 배치,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가입,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환구시보 역시 “문 대통령의 방중은 의심할 바 없이 양국 모두에 좋은 일”이라며 “다만 사드 문제는 아직 지나간 일이 아니고 양국 관계의 ‘아픈 곳’으로 남아 있다”고 한국에 대한 공세를 거들었다. 심지어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성주 사드 기지와 관련해 현지 조사와 기술적 설명, 중국 방향 차단벽 설치 등 막무가내식 요구를 우리 정부에 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공식적으로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중국이 결코 사드 문제를 쉽게 놓지 않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한중 양국 간 인식 차이가 있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이런 상황을 잘 관리하자는 의미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당국자는 “단계적 처리에 대해 중국이 쓰는 표현과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면서 “우리가 말하는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이 아니라 ‘현 단계에서(at the current state)’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이 더 구체적으로 사드에 대한 세부적인 이행을 우리에게 요구할 수도 있다”며 “우리 정부도 사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정영현기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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