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의 여파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일주일 연기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있고 나서 치러진 2018학년도 수능시험이 치러진 23일. 지진의 진앙지였던 경북 포항에서 수능시험을 본 학생들은 시험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그 어느 때보다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고사장을 나오던 박서연(19)양은 “수학 시험 도중 여진이 있었다고 하는데 집중하느라 그랬는지 느끼지 못했다”며 “지진이 나고 수능이 일주일 미뤄지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드디어 해방”이라고 감회를 밝혔다. 또 이소희(20)양은 “예민한 건지 모르겠지만 시험 볼 때 진동을 느껴 움찔움찔하기도 했다”며 “수능이 미뤄지면서 왠지 자책감 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은 무사히 끝마쳐 마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12년+1주일’의 입시 지옥을 끝낸 홀가분함은 전국의 수험생들이 마찬가지였다. 서울 종로구 동성고에서 수능을 본 김정한(19)군은 “지금까지 수능만 바라보고 살다시피 했다”며 “일주일이나 미뤄져 솔직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끝나고 나니 족쇄가 풀린 것만 같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이화외고에서 시험을 끝내고 나온 김지영(19)양은 “놀이공원에 너무 가고 싶은데 여행도 가고 싶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선은 맛있는 걸 먹겠다”고 말했다.
시험장 밖에서 혹시 무슨 일이 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던 학부모들도 하나둘 수험생이 나오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딸을 기다린다는 김영자(54)씨는 “누구보다 아이가 가장 큰 고생을 하지 않았나”라며 “잘 견뎌낸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또 다른 학부모 권영숙(47)씨는 “일주일 동안 더 고생한 아이를 그냥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국 1,180여개 시험장에서 수험생 59만명이 응시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강한 여진 없이 순조롭게 막을 내렸다. 오전11시35분께 포항시 북구에서 규모 1.7의 지진이 발생했지만 흔들림이 거의 없어 시험을 계속 치를 수 있었다. 이날에는 사람이 느끼기 힘든 규모 2.0 미만의 ‘미소지진’만 오전에 네 차례가 있었다.
전국 고사장마다 수험생 선배에게 전하는 후배 학생들의 응원도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이날 아침 고사장 정문마다 ‘수능 대박 나세요’ ‘오래 기다린 만큼 잘해낼 거예요’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고 후배 학생들과 자원봉사단은 핫팩·초콜릿·커피 등을 수험생에게 전달했다. 포항제철중학교 앞에 핫팩을 한 아름 들고 선 윤정숙(63)씨는 “꽃 같은 아이들이 지진 때문에 고생 많았다”며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수능을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수능시험 전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긴장감이 가득했다. 한 수험생 어머니는 아침에 포항 유성여고로 들어가는 딸을 꼭 껴안아준 뒤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입실 마감시간 이후에도 교문 앞을 지키던 임정아(45)씨는 시험장에 들어간 딸에게 ‘조금만 흔들려도 시험 치지 말고 그냥 내려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임씨는 “애 시험장이 맨 꼭대기인 4층에 배정돼 속상하다”며 “애가 중요하지 대학은 나중 문제”라고 말하며 계속 문자메시지를 이어갔다. 이날 저녁 그는 시험을 마치고 나온 학생을 안아주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포항=신다은·최성욱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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