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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소송끝에 '경찰폭행' 누명 벗었지만…웃지 못하는 사연

귀농 꿈 좌절된채 편의점 알바로 생계 이어가

부인도 위증 혐의로 교사직 잃고 공장서 일해

“재판 끝내고 속히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당시 촬영된 캠코더 영상. /연합뉴스




음주 운전 단속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박철(54)씨가 재심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무죄를 얻어냈다. 8년이라는 기나긴 법정 싸움 끝에 얻어낸 ‘무죄’ 판결이었지만 그는 웃을 수가 없었다.

검찰의 공소장에 담긴 내용은 이렇다. 박씨는 2009년 6월 27일 오후 11시 3분께 부인 최모씨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가다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을 받았다. 박씨는 당시 술을 마신 상태였다. 그는 부인의 음주 여부를 확인하려던 박모 경사에게 욕설하며 항의했다. 그가 차에서 내려 욕설을 계속하자 박 경사는 최씨에게 “전화번호를 주고 돌아가라. 다음에 불러 주의를 주든지 하겠다”고 귀가를 종용했다. 그러나 박씨는 또다시 욕설과 함께 박 경사의 오른팔을 잡아 비틀어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런데 박씨 부부의 상황 설명은 공소장 내용과는 상당히 다르다. 우선 시비는 부인 최씨가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에 응한 이후 벌어졌다. 재판 과정에서 양측이 모두 인정한 사실이다. 박씨는 차 안에서 박 경사에게 욕설한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두 차례 욕설을 한 것은 맞지만 한적하고 어두운 길에서 경찰관이 갑자기 도로에 나타나 급정거를 하게 됐고, 이에 대한 항의 과정에서 술김에 나온 말”이라고 항변했다. 박씨는 “공소장에는 내가 스스로 차에서 내린 것으로 돼 있지만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끄집어내려 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량 밖에서도 고성이 오가는 과정에서 “너 이○○”라는 단 한 차례 격한 발언이 있었지만 공소장에 적시된 욕설은 없었고, 이는 당시 박 경사의 동료 경찰관이 현장을 촬영한 캠코더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사건의 쟁점인 박 경사의 팔을 잡아 비튼 동작에 대해서는 “(박 경사가) 갑자기 혼자 넘어지는 상황을 연출했다”고 혐의를 전면부인했다. 현장 영상에는 오른쪽 팔이 뒤로 꺾이며 쓰러질 뻔한 자세의 박 경사 모습이 담겨 있었다. 다만 둘 사이에 박씨 아들이 서 있어서 실제 박씨가 박 경사의 팔을 잡고 비틀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석연치 않은 점들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법원은 박씨 부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유죄가 인정돼 벌금 200만원의 형이 확정됐고, 이 과정에서 부인 최씨는 “남편이 경찰관 팔을 비튼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가 위증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교육공무원인 유치원 교사직도 잃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씨는 부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경찰관 폭행 혐의를 부인했다가 위증 혐의로 다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큰 가구점을 운영하다 ‘제2의 인생’을 위해 충주로 귀농한 박씨 부부는 이 사건으로 1년 만에 농부의 꿈을 접고 박씨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부인은 공장에 일을 나가야 했다. 이들 부부의 고난은 2015년 8월 박씨의 위증 사건이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받으며 반전을 맞았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화질을 개선한 동영상 등을 근거로 “팔이 꺾이는 장면을 확인하기 어렵고, 박씨 자세로는 박 경사의 상체를 90도 이상 숙이게 하는 게 매우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며 경찰관의 ‘할리우드 액션’ 가능성을 지적했다.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돼 박씨는 무죄가 확정됐다. 박씨의 공무집행 방해 사건도 재심 끝에 지난 27일 무죄가 선고됐다. 특히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재심에서 배심원 7명 전원은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박씨의 변론을 맡은 박훈 변호사는 “검찰은 더는 무의미한 항소를 하지 말고, 박씨를 무고한 경찰관 2명에 대해 무고, 모해위증,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 수사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검찰의 두 번에 걸친 보복성 기소에 대해서도 반드시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 부부는 현재 부인 최씨의 위증 사건에 대해서도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박씨는 “억울한 송사에 휘말린 사람들이 모두 그렇겠지만 심적인 갈등, 고통, 괴로움이 왜 없었겠느냐”며 “그래도 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텼고, 여기까지 오게 돼 다행”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모든 재판이 끝나 하루속히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손샛별인턴기자 set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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