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이 ‘인간 가스실 실험’을 한 것이 드러나 독일 사회에 파문이 일고 있다.
논란은 폴크스바겐과 다임러, BMW 등 자동차 업체들이 지원하는 ‘유럽 운송분야 환경보건연구그룹’(EUGT)의 실험에서 시작됐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의뢰해 논란이 된 이 단체가 인체를 대상으로 배출가스 유해실험까지 맡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9일(현지시간) 공영방송 도이체벨레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다임러는 “해당 실험을 강력히 비판한다. 연구 방법론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다임러의 가치와 윤리적 원칙에 어긋난다”고 성명을 낸 뒤 사건과 관련해 자체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도 성명에서 “당시 선택된 과학적 방법이 잘못됐다”고 밝혔다. 한스 디터 푀취 폴크스바겐 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실험”이라면서 “자문위가 이를 조사할 것이다.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간 슈투트가르트차이퉁(StZ) 등의 보도에 따르면, EUGT는 아헨공대 연구소에 의뢰해 4주 간 ‘건강하고 젊은 남녀’ 25명을 대상으로 1주 1회, 3시간씩 다양한 농도로 질소산화물을 흡입한 뒤 건강을 점검하는 실험을 했다. EUGT는 실험 결과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EUGT의 인체 실험 의뢰를 받은 독일 아헨공대 연구소는 “연구의 목적 제한치 미만의 이산화질소(NO2) 노출이 건강한 지원자들에게 생물학적 영향을 미치는 지 파악하는 것”이라며 “연구는 트럭 운전사와 차량 정비공, 용접공에게 직업 안정성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극히 비침습적인 기술이 생물학적 반응을 끌어내는 데 사용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슈테판 자이베르트 독일 정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인간과 원숭이를 상대로 한 이런 실험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많은 이들이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해당 업체들이 실험의 목적을 밝히고 의문점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티안 슈미트 교통부장관도 “가스 흡입 실험을 강력히 비판한다”면서 “이것은 다시 자동차 업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바바라 핸드릭스 환경부 장관은 “뉴스를 접하고 공포스러웠다”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을 보면 역겨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자동차 업계와 연구기관은 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 지 설명해야 한다”면서 “업계가 뻔뻔하고 의심스러운 과학적 연구 방법을 명백히 숨기려 했다는 사실이 더욱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미국 뉴욕타임스는 2014년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민간 의학연구소인 LRRI가 EUGT의 의뢰로 기밀실에 원숭이 10마리를 가둬 놓고 하루 4시간씩 자동차 배출가스를 맡도록 하는 실험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주환 인턴기자 juj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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