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인플레이션 공포가 글로벌 증시를 연일 뒤흔들면서 미국이 진앙이 된 이번 증시 폭락이 ‘버블 붕괴’의 전조가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와 저물가, 낮은 변동성 속에 거품이 낀 주식과 채권시장이 미국의 긴축시계가 빨라지면서 재평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발 금리 상승이 가시화하면서 국내 증시 역시 저금리로 풀렸던 유동성이 위축돼 본격적인 하락 장세로 접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다만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기 호조세가 탄탄한 상황에서 월가의 ‘머니게임’이 잦아들고 금리가 안정되면 조정 장세가 단기에 마무리될 수 있다는 관측도 여전하다.
5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4.6% 급락하며 7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시장 변동성을 나타내는 공포지수가 단숨에 2배로 급등하고 주요 지수가 줄줄이 곤두박질치면서 미 증시에서는 이달 들어 사흘 동안 시가총액이 1조달러(약1,090조원) 이상 증발했다. 미국발 공포 심리는 아시아로도 어김없이 번졌다. 6일 일본 도쿄증시에서 닛케이지수가 장중 5% 이상 급락했다가 4.73%의 낙폭으로 장을 마감했으며 홍콩·베트남·대만 증시도 4~5%대의 낙폭을 보였다.
이틀째 지속되는 글로벌 긴축발작이 발생한 것은 시장 주변을 꾸준히 맴돌던 자산 버블 우려와 본격적 금리 인상 경고음이 한꺼번에 터졌기 때문이다. 미 증시가 지난해 20% 이상 오르고 올 들어서도 1월에만 5~6% 오름세를 이어간 가운데 2일 발표된 높은 임금 지표가 미 경제 성장세와 맞물려 ‘인플레이션 공포’를 시장에 각인시키며 증시의 높은 밸류에이션을 무너뜨리는 방아쇠가 된 것이다.
저금리의 둑이 붕괴되는 모습이 확연해지자 시장에서는 자산 거품이 급속히 꺼지면서 지난 9년 동안 지속된 강세장이 상당 기간 조정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 목소리가 벌써 커지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증시와 채권시장에 거품이 있다”면서 “향후 장기 금리에 큰 상승이 있을 것이고 이는 증시와 채권시장의 거품에 위태로운 문제를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0년 초 닷컴버블 붕괴를 적중시킨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이에 앞서 지난달 전미경제학회와 다보스포럼에서 잇따라 “고평가된 미 증시의 조정이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고 시장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월가의 투자자문사인 리처드 번스타인도 이날 “채권과 주식시장이 모두 재평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지금까지 호황장을 견인해온 요인들에 힘이 빠지면서 본격적인 하락장이 전개될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미국 연준의 긴축이 시작되면서 국내 금리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가운데 지금껏 증시를 떠받쳐 온 유동성 위축으로 인한 증시 거품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증시를 이끌어온 삼성전자 주가도 만만치 않은 변수다. 스마트폰 판매 감소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호황을 누렸던 반도체 부문에서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실적 거품이 꺼질 경우 우리 경제의 굴곡이 깊어지면서 증시가 중대한 변곡점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금융시장은 아직 당분간 증시가 휘청거리더라도 시중 금리가 안정을 찾으면서 조정이 일시적 국면에 그칠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 5일 뉴욕증시에서는 장 초반 지수 하락이 소폭에 머물다 오후3시가 가까워지며 프로그램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폭락하는 대신 안전자산인 채권으로 돈이 몰리며 ‘머니게임’ 양상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증시 폭락의 빌미를 제공한 10년물 국채 금리 상승세에 제동이 걸리면서 이날 10년물 금리는 5.89bp(1bp=0.01%) 내린 2.794%에 머물렀다. 경기 호조세가 여전히 탄탄해 2월 만기 VIX 선물도 이날 17.80에 머물렀다고 마켓워치는 전했다. 대형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최고투자책임자는 “조정 국면이 예상보다 빨리 왔지만 현 거시경제에서 볼 때 중요하지 않은 조정”이라고 말했다./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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