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데뷔앨범 녹음을 위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연구하고 연주하면서 어릴 적 갖고 있던 피아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되찾은 기분이었어요.”
피아니스트 지용(27·사진)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워너클래식 데뷔앨범 발매 기념 간담회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인 바흐에게 열 번, 백 번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용은 백건우·임동혁·임현정에 이어 워너의 이름을 달고 앨범을 발매한 한국의 네 번째 피아니스트다.
지난 2001년 뉴욕필하모닉 영아티스트콩쿠르에서 10세의 나이로 우승을 차지한 그는 이듬해 세계적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IMG와 최연소 아티스트로 계약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용은 클래식과 일반 대중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활동을 다양하게 펼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음악뿐 아니라 무용·패션·디자인에도 관심이 많고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 구글의 광고에도 출연하며 화제를 불러모았다.
이처럼 다재다능한 천재형 아티스트지만 지용은 10대 후반 어둡고 긴 방황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다. 피아노만 생각하면 그저 즐겁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열정이 사라졌다고 느껴 2년 동안 음악계를 떠나 있었다. 지용은 “마치 구경꾼처럼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것이 싫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고민하고 방황하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20대 초반의 어느 날 예브게니 키신이 연주한 바흐의 곡을 듣고 세상이 뚫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다시 용기를 얻고 음악을 가까이하며 바흐에 몰두하기 시작했지요. 이제는 평생 피아니스트로 살 거예요.”
힘든 시기를 통과한 지용이 자신의 데뷔앨범 레퍼토리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선택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주제 선율을 제시하는 G장조의 아리아에서 시작해 총 30번의 변주를 거쳐 다시 처음의 아리아로 돌아오는 구조를 지닌다. 덕분에 바흐가 남긴 건반 음악 중 가장 길고 독창적인 곡으로 꼽힌다.
지용은 “바흐의 곡이 나온 지 300년이 됐는데 남들과 똑같이 연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내가 느끼는 ‘나만의 바흐’를 앨범에 담았다”고 자신했다. “세상이 요즘 참 시끄럽고 어지럽잖아요. 삶의 진실한 의미가 담긴 바흐의 곡을 들으면서 사람들이 평화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오는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주회도 연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물론 페루초 부소니가 편곡한 바흐의 코랄프렐류드, 모리스 라벨의 ‘라발스’, 로베르트 슈만의 ‘아라베스크’ 등을 연주한다. 공연 제목으로는 ‘아이 엠 낫 더 세임’이라는 자신만만한 간판을 내걸었다. 지용은 “다른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싶은 마음에서 지은 제목이에요. ‘모두가 똑같아지려고 노력하지 말자’고 외치고 싶었다고 할까요. 아름다운 음악이란 결국 각자 다른 개성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웃음).”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워너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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