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의 열기가 뜨겁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선보인 5G(세대) 기반의 ICT(정보통신기술) 응용 서비스도 연일 화제다.
지난 9일 개막식에선 5G망에 900여 개 LED 촛불을 연결해 ‘평화의 비둘기’를 만드는 장관을 연출했다. 또 초대용량 콘텐츠를 ‘초고속’, ‘초저지연’으로 보낼 수 있는 5G 기술로 봅습레이 경기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싱크뷰, 넓은 경기장을 한 눈에 보여주는 옴니 포인트뷰, 다양한 각도의 화면을 보여주는 인터렉티브 타임슬라이스 등 5G 기반의 실감형 서비스를 속속 선보였다.
5G는 최대 속도가 20Gbps로 4G인 LTE(롱텀레볼루션)보다 20배에서 최대 100배 이상 빠르다. 데이터 지연속도는 0.001초로 LTE의 0.01초에 비해 10배 빠르고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는 기기도 10배 이상 늘어난다.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통신망이 빛의 속도로 진화하면서 블록체인이 5G망 위에 제대로 올라탈 수 있을지 관심이다. 블록체인이 ‘제2의 인터넷’으로 불리며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아도 태생적 한계인 확장성(scalability), 속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기본은 ‘네트워크에 속한 모든 참여자가 모든 거래를 기록하고 관리해 중간 관리자 없이 위·변조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에 속한 모든 노드가 네트워크 전체 거래 내역을 저장하고 검증하는 방식이다. 해시로 연결된 블록체인 분산 원장을 모든 노드가 갖고 있어 데이터 변조 여부를 분산 노드들이 검증한다. 이를 통해 무결성과 보안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네트워크 전체의 처리 능력을 단일 노드 처리 능력으로 묶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용자가 늘고 블록이 많아지면 속도는 뚝 떨어진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으로 만든 고양이 수집 게임 ‘크립토키티’의 사용자 수가 20만 명으로 늘자 이더리움 전체 네트워크가 느려지고 거래 비용이 올라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비트코인은 블록 사이즈가 1MB로 묶여 있어 하나의 블록에 넣을 수 있는 거래내역이 제한적이다. 거래 처리도 초당 7개에 불과하다. 신용카드가 1초에 수백만 건의 거래를 처리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블록 사이즈를 확장하기도 어렵다. 블록 사이즈가 커지면 해시 연산을 하기 위해 컴퓨터 성능을 더 높여야 한다. 고성능 컴퓨팅 파워, 늘어난 블록체인 기록의 저장은 결국 비용증가로 이어진다. 확장성과 속도가 생명인 금융거래에는 무용지물이다.
업계에서는 블록체인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유력한 해결책으로 샤딩(Sharding)과 오프체인(off-chain)을 이용한 제 2계층 프로토콜 방식을 꼽는다. 이미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검증된 기술로 이미 사용 중이다.
이중 샤딩은 거래 내역을 쪼개서 노드 그룹들에게 나눠주고 병렬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역할 분담 모델인 셈이다. 노드를 그룹으로 나눠 거래를 검증하도록 함으로써 속도와 효율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텔레그램이 3세대 블록체인으로 개발 중인 TON(Telegram Open Network)도 동적 샤딩 방식을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네트워크 거래량에 따라 자동으로 노드 그룹을 쪼개거나 묶어 거래를 처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오프체인은 블록체인 밖에서 거래 내역을 처리하고 최종 거래 결과만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계층화 프로토콜 방식이다. ‘글로벌 합의는 느리지만, 지역적 합의는 빠르다’는 원리를 응용했다. 거래 내역은 블록체인 외부에서 처리하고 결과만 블록체인에 기록하기 때문에 거래가 빈번할 때는 블록체인 밖의 오프체인에 기록하고, 거래가 끝나면 블록체인에 옮겨 온체인(on chain)에 기록한다. 2단계 계층화 구조로 확장성을 키웠다.
블록체인이 혁신적 기술인 건 맞다. 그러나 아직 완벽하게 검증이 끝난 시스템은 아니다. 그리고 사용자들이 체감하는 블록체인 서비스는 소프트웨어로 구현되는 것들이다. 인간 세상에서 완벽한 소프트웨어란 존재할 수 없다. 끊임없이 버그 혹은 보안 취약점을 찾고 개선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중앙 집중 방식은 중앙 서버 업데이트로 간단히 해결한다. 반면 블록체인은 분산 구조라 네트워크 참여자 모두를 빠르게 패치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분산 네트워크에서 패치(업그레이드)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프로토콜 개발이 중요하다.
LTE와 WiFi(와이파이)는 서로의 비전을 공유하고 서로의 장점을 모방하면서 진화했다. 블록체인도 분산장부와 중앙 집중식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의 장점을 모방하며 진화할 것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의 장점과 한계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블록체인으로 현재의 시스템이 풀지 못하는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틈새시장을 열 수 있다.
와이파이와 LTE가 1세대에서 5세대까지 발전을 이어오는 과정은 길고도 험난했다. 국제 표준화와 시험, 상용화, 서비스를 반복하면서 검증에 검증을 거쳤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체계적 기술개발과 효율적 정책 연구를 위해선 서둘러 국제 표준화 기구를 만들고, 지속적인 버전 업데이트와 다양한 사용 시나리오에서 대한 시험과 상용화, 서비스 검증에 대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 필자 주 :
1세대 인터넷의 발전을 주도한 ‘중앙집중식 데이터베이스’와 2세대 인터넷으로 불리는 블록체인의 ‘분산장부’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은 5G 세대로 발전한 기간 통신망과 근거리 무선통신인 와이파이(WiFi)의 상호 유기적인 발전과정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이에 대한 설명을 추가한다.
▲ 5G & WiFi vs. 중앙 서버 & 블록체인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정보통신기술)는 컴퓨터·스마트폰 등의 하드웨어와 이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 보존, 전달, 활용하는 모든 기술을 의미한다. 한국은 ICT 발전지수 1위, 인터넷 접속률 1위, 인터넷 평균 접속 속도 1위로 2017년 정보화 지표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흔히 말하는 5G의 공식 명칭은 ‘IMT-2020’이다. 5G의 비전은 ‘최대 20Gbps의 전송 속도로 1㎢ 면적에 약 100만개의 기기를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하고, 시속 500㎞의 고속열차에서도 끊임없는 통신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인터넷에 연결돼 있는 IoT 시대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IoT 시대에 사물들은 인간의 일상 뿐 아니라 생명과 재산, 안전과 직결된 분야에도 응용된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가상현실·초고화질 디스플레이·자율주행차·드론 기술은 초고속, 초저지연, 초밀집, 초대용량 네트워크를 구현하는 5G 통신망이 필수다. 5G는 IoT의 범위와 파워를 놀랄 만큼 넓혀준다.
무선통신 기술이 1세대에서 5세대로 발전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유선에서 벗어나 무선으로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준 무선통신, 셀룰러(Cellular)는 정부에 비싼 사용료를 내고 면허(Licensed) 주파수 대역을 할당받아 서비스를 한다. 중앙 제어 장치 역할을 하는 기지국이 많은 단말을 제어하고 서비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용료가 비싸다. 속도 향상과 네트워크 용량도 제한적이다.
반면 WiFi(와이파이)는 주파수 사용료가 없는 비면허(Unlicensed) 주파수 대역을 쓴다. 중앙제어장치의 의존도를 확 줄였고 단말들간 합의와 경쟁에 의해 통신하는 분산형 경쟁 네트워크 구조다.
와이파이는 통신 가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통신 속도를 대폭 향상 시킨 혁신적 기술이었다. 그러나 셀룰러 통신 방식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 했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기존의 기술을 대체하지 못 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 당시 와이파이는 그런 운명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7년 애플이 셀룰러와 와이파이를 통합한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뒤집혔다. 스마트폰의 인기와 함께 와이파이가 주목 받았다. 와이파이 기술은 셀룰러 통신 방식과 찰떡궁합이었다. 와이파이를 쓸 수 없는 실외에선 셀룰러로 비용을 내지만, 실내에선 와이파이로 대용량의 초고속 데이터 통신을 공짜로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 대성공을 거뒀다.
셀룰러는 5G로 발전했다. 4세대 망인 LTE와 와이파이는 하나의 단말에 집중해서 성능과 서비스 품질을 높였다. 이에 반해 5G는 분산 네트워킹 기술을 이용해 단말들이 밀집한 네트워크 서비스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고 사물인터넷 환경까지 고려한다.
와이파이와 셀룰러 통신도 5G로 달려나가고 있다. 와이파이는 셀룰러 통신 방식처럼 이동 환경과 장거리의 실외 환경도 지원하고 수천개의 단말도 접속이 가능하도록 기술개발 중이다. 셀룰러도 와이파이처럼 비면허 대역에서도 통신이 가능하도록 해 비용 부담을 줄이고 대용량의 초고속 통신을 지원하도록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다. 오랜 세대를 걸쳐 갈고 닦으며 발전해온 5G의 초고속, 초저지연, 초밀집, 초대용량 네트워킹 기반 기술은 블록체인 기술과 함께 한 번 더 도약할 것으로 기대한다.
파괴적 혁신 기술이 전통 기술을 대체하기도 한다. 그러나 와이파이처럼 혁신기술이 전통 기술과 상호보완하며 동반 성장의 길을 걷기도 한다. 블록체인은 후자에 속하고 동반성장 혁신기술이 될 수 있다고 본다.
1세대 블록체인은 효율성보다 자율성에 더 중점을 두고 설계되어 규모가 큰 거래 시스템에 적용하기 어렵다. 블록체인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보안성이 향상되지만 거래량이 증가해서 합의에 도달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현재로선 블록체인은 빠른 속도가 중요한 서비스에 적용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블록체인은 블록이 체인 모양처럼 직렬로 연결되어야 하므로, 병렬 처리가 가능한 전통적인 중앙 집중식 서버보다 느릴 수 밖에 없다.
중앙 집중식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와 블록체인의 분산 원장은 LTE와 와이파이처럼 상호보완되는 장단점을 지녔다. 5G 인프라로 튼튼한 ‘뼈대’를 만들고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심장’과 연동되는 분산원장 ‘순환계’를 구성하면 신체 구석구석에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을까?
블록체인이 실제 ‘순환계’ 역할을 수행하려면 와이파이가 20여 년 동안 수 많은 버전 업그레이드를 통해 진화했듯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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