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동메달이래!”
지난 20일 저녁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한국의 김아랑(고양시청), 최민정(성남시청), 심석희(한체대), 김예진(평촌고), 이유빈(서현고)이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금메달을 확정 짓던 순간. 인근의 강릉 라카이 샌드파인 리조트에 위치한 ‘홀랜드 하우스’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대형 스크린에는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네덜란드 선수들의 모습이 등장했다. 방문객들은 잠시 “왜 동메달이냐”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방문객부터 노년층까지 모두 잔을 기울였다. 강릉 속 작은 네덜란드 ‘홀랜드 하우스’에서 축제가 열리는 순간이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홀랜드 하우스’는 네덜란드 올림픽위원회(NOC)가 주관하고 하이네켄이 운영하는 국가 홍보관이다. 일반인에게도 방문이 허용돼 네덜란드인뿐 아니라 올림픽을 찾은 관광객들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네덜란드는 이날 경기에서 캐나다와 중국의 실격으로 이례적으로 동메달을 승계했다.
뜻밖의 행운에 장내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지만 사실 오픈 이후 이곳에서 축제는 일상이다. 네덜란드가 거의 모든 메달을 휩쓰는 스피드스케이팅 덕분이다. 이곳의 오렌지 색 벽면에는 이번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커다란 사진과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중 6명은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다. 이날도 한 직원이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0m에서 금메달을 딴 에스미 피세르의 사진과 현판을 벽에 걸자 네덜란드인들은 어깨에 힘을 주며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선수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번 올림픽에서 네덜란드는 스피드스케이팅 메달을 ‘싹쓸이’하고 있다. 지난 10일 여자 3,000m에서는 금·은·동메달을 모두 휩쓸었고 남자 5,000m에서 ‘빙속황제’ 스벤 크라머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15일 남자 1만m에서 우승한 캐나다의 테드 얀 블로먼조차 사실은 네덜란드에서 귀화한 선수다. 16일 에스미피세르까지 총 6개의 금메달이 모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나왔다.
이처럼 네덜란드가 빙속 강국이 된 비결이 따로 있을까. 이날 만난 방문객들은 대개 ‘큰 키’를 이유로 들었다. 네덜란드 남성의 평균 신장은 183㎝로 세계에서도 가장 크다. 이번 올림픽 관람을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네덜란드의 에스트리드(40)는 “네덜란드가 금메달을 딴 스피드스케이팅은 모두 장거리 종목인데 키가 크기 때문에 근력도 많고 더 유리하다”며 “기술이 필요한 단거리 종목은 일본이나 한국이 더 잘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스피드스케이팅은 쇼트트랙에 비해 직선이 길고 코너가 급격하지 않아 다리가 긴 선수가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세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도 자랑거리다. 친구와 함께 강릉을 찾은 한 네덜란드 관광객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프로 축구팀이 인기가 많듯 우리는 스피드스케이팅 프로팀을 응원한다”며 “스케이트 경기 관람이 다른 나라에 비해 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스케이트 프로팀은 8개이며 장거리 트랙을 갖춘 아이스링크는 미국(6개)의 3배인 20개에 이른다. 프로 팀들은 재원을 스스로 마련해야 해서 경쟁이 치열하다. 사람들은 “선수들은 직업적으로 열심히 운동하고 우리는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분위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스케이트를 타고 출근한다”는 속설은 사실일까. 대부분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같은 질문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2년 이후 네덜란드 운하는 스케이트를 탈 정도로 얼지 않는데다 경기를 할 만큼 춥지 않아 1997년부터는 세계에서 가장 코스가 긴 마라톤 스케이트 경기도 중단됐다.
/강릉=서지혜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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