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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트럼프를 넘어서(Beyond Trump)

손철 뉴욕특파원





‘피해망상에 빠진 사기꾼’은 누굴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목한 이 같은 노골적 비난은 인터넷에 댓글들로 달린 것이 아니다. 무당파로 지난해 초까지 4년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존 브레넌이 최근 공개적으로 날린 트윗이다. 미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정말 멍청하고 미쳤다”는 표현을 동원해 겨냥한 인물 역시 같은 사람이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철강·알루미늄 수입국에 관세 폭탄을 부과하겠다며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후 나온 ‘말 폭탄’들이다.

혹독하지만 객관적 사실에 상당히 부합하는 이런 비판을 귀담아듣는 이가 적고 트럼프 대통령 앞에 가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이유는 뭘까. “트럼프가 지구상에서 최고의 거짓말쟁이인 것을 몰랐나”라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문에서 답을 유추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역사상 최악의 진흙탕 대선에서 진절머리 나는 워싱턴 정치의 허위와 가식을 대변한 힐러리 클린턴보다 ‘차라리 거짓말쟁이가 낫다’고 선택한 순간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대다수 미국민의 기대치는 이미 지하실 밑으로 처박힌 것이다.

여기에 명실공히 ‘세계 최강대국의 최고 권력자’라는 현실도 똬리를 틀고 있다. 금과옥조라도 무시할 수 있고 허튼소리여도 중하게 모셔야 하는 강자의 논리다. 뉴욕이나 워싱턴DC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전 통상 당국자나 기업인들이 “한미 FTA가 얼마나 미국에 좋은데 그걸 바꾸고 폐기하냐”고 꼼꼼히 수치들을 제시하며 설득할 때마다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미국 대통령이 원한다”는 것이다. 13개월여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원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이유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일격을 맞은 것은 비단 한미 FTA뿐만이 아니다. 교황도 붙잡았지만 트럼프는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했고 수년간 공들여 쌓아올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한 날 반쪽이 됐다.

미국이 당면한 최대 위협인 북핵 문제의 당사국이자 여전히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은 특히 트럼프가 사기를 치든 광기를 부리든 쓴소리 한마디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트럼프의 한 마디에 어느 나라보다 민감하게 일희일비했다.

이제는 충분하다. 현직 미국 대통령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를 인정하면서도 트럼프를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다. 이미 그런 움직임은 곳곳에서 용솟음치고 있다. 반쪽이 된 줄 알았던 TPP는 어느새 기력을 회복해 미국이 다시 기웃거리는 모양이다. 파리기후협정은 아이러니하게 트럼프의 탈퇴 선언이 관심을 증폭시키며 미 기업들의 자발적 동참에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트럼프의 무역장벽 쌓기에 유럽연합(EU)은 물론 중국까지 자유무역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미국의 시스템과 양심도 트럼프를 방관하고 있지만은 않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맞서 여당인 공화당은 똘똘 뭉쳐 반대 목소리를 내고 백악관의 최고위 참모는 끝까지 “이러시면 안 된다”고 소신을 굽히지 않다가 사임으로 항변했다. 대법원은 단지 서류가 미비한 수십만 청년들을 추방하려는 트럼프의 시도를 견제하며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세계를 강타한 미국의 ‘미투’ 운동과 플로리다 고교 총기 참사 이후 10대들의 참여하에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총기규제 움직임을 언급하며 “드디어 선량한 시민들의 열정이 변혁을 추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거쳐 미국의 정치 지형이 실제로 변화할 가능성을 예상했다.

마침 한국도 트럼프가 ‘화염과 분노’로 열어준 공간을 이용해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열어젖혔다. 트럼프 정부의 ‘최대 압박’이 효과를 낸 측면이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려는 노력과 상상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진전은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강화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무역규제와 재협상 압박에 담대하게 대처하면서도 그간 소원했던 무역상대국과의 공조 체제를 다지고 국내 산업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는다면 트럼프 정부는 물론 트럼프 이후에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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