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빅뱅(우주 생성의 대폭발) 이전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은 빅뱅을 통해서 비로소 시작됐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말입니다. 그의 연구성과는 모르더라도 모두가 그를 쉽게 떠올리는 이유는 시간과 장애와 싸워 이긴 그의 이야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에서 ‘빅뱅’은 21살 때 진단 받은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이제 막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진학한 물리학도의 앞날은 암전 상태가 됐죠. 그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년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루게릭병을 진단받기 전까지 나는 삶에 대해 지겨워하고 있었다. 할 만한 가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내가 처형당하는 꿈을 꿨다. 갑자기 나는 내 사형 집행이 연기된다면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으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과거보다 지금의 나의 삶을 더 즐기게 되었다”
호킹 박사의 의지 때문인지 그의 증세는 예상보다 느리게 진행됐습니다. 그는 장애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시간이 아까워 연구에 몰두했죠. 30대 초반에는 손이 마비돼 그의 유일한 연구실은 머릿속이 됐습니다. 마흔에는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다독입니다.
“나의 장애는 과학연구에서 심각한 걸림돌이 아니었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었다”
◇장애보다 절박했던 건 시간
“나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시한부 인생으로 보냈다. 그래서 나에겐 언제나 시간이 귀중하다”
그가 목숨을 걸고 하는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시간 낭비하는 걸 가장 싫어했고 하루에 녹음할 수 있는 단어가 고작 세 단어에 불과할 때도 끊임없이 사색하며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저의 목표는 간단합니다. 우주에 대한 완벽한 이해죠. 우주가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밝히는 겁니다”
1985년 첫 번째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습니다. 제네바에 다녀오다가 폐렴으로 인한 급성 심장정지가 찾아왔지만 인공호흡기를 떼기 직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생사를 넘나들며 분투한 연구의 결과가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게 1988년 나온 대중과학서 <시간의 역사>를 통해서입니다. 물리학의 관점으로 우주와 시간을 다루고 있음에도 1,000만부가 넘게 팔렸죠. 비행기에 타기 전 들고 가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소망도 이뤄졌죠.
그는 이후 전 세계를 돌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신의 의지로는 근육 하나 움직이기 힘든 몸으로 무중력 비행을 경험하고 우주 여행 계획까지 세웁니다.
그의 또 다른 정체성은 철학자였습니다. 2011년 그는 현대사회에서 “철학은 죽었다”고 말하며 “과거에 철학이 했던 일의 대부분은 과학에 의해서 질문되고 답을 얻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론물리학을 연구하며 살아온 세월은 영광스러웠다.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면 나는 행복하다”
그의 시간은 지구에 남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정혜진·정수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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