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서로 관세 폭탄을 터트리며 무역전쟁이 현실화하자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공포감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뛰어들어가면서 아시아 시장에서는 주요국 주가지수가 3% 이상 급락한 반면 엔화 가치가 16개월 만에 105엔대를 밑도는 등 안전자산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관세 폭탄을 구체화하기까지 15일의 시간이 남아 있는 가운데 시장은 미중 무역전쟁이 최소한의 선에서 봉합되기를 기다리며 당분간 불확실성에 지배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아시아 증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수입품 중 500억달러(54조원) 상당의 수입품에 25%의 고율 관세 부과를 결정하고 이에 중국이 맞불 관세를 예고하는 등 미중 통상전쟁이 글로벌 경제 전반의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요동쳤다. 투자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이날 도쿄와 중국·홍콩 등 아시아 각국 증시는 3~4%대의 큰 낙폭을 보였다. 코스피 지수도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우려에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장 중 2,420선이 무너지는 등 아시아 시장과 동반 하락했다. 미국의 철강 관세 면제 대상에서 배제된 일본 증시의 닛케이지수는 엔화 강세와 맞물려 장 중 1,000엔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마이클 스캔론 매뉴라이프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이 일종의 전염병처럼 다른 나라로 번지면서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면서 시장이 이미 경제성장 둔화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는 상황에 관세 보복이 경기 둔화 속도를 더욱 높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수입 관세가 결국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고 이는 기업의 수익에 타격을 주거나 개인 소비를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며 “글로벌 경기가 조정 국면에 들어갈 경우 불황 속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시장에서 더욱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엔화와 금 등 안전자산은 강세를 나타냈다. 블룸버그는 “무역전쟁에 따른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엔화를 적극 매수하면서 강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주가 하락에 이어 엔화까지 급등하자 아소 다로 재무상은 “미중 무역을 두고 시장이 과잉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며 구두 진화에 나섰지만 겁에 질린 시장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증시 불안에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금리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국내 시장 지표채권인 3년물이 3.3bp(1bp=0.01%포인트) 내린 2.223%를 기록했고 5년물은 5bp 하락한 2.434%에 마감했다. 10년물과 20년물도 각각 4.6bp, 3.0bp 하락해 2.648%, 2.653%를 기록했다. /노현섭·조양준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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