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맛은 ‘씁쓸’하지만 끝맛은 속이 ‘뜨뜻’해지는, 그래서 인생을 좀 살아봐야 안다는 술, 소주.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극본 박해영, 연출 김원석)에 시청자들이 “소주 같다”는 반응을 보내고 있는 이유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 드라마의 씁쓸하지만 따뜻한 위로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지난 4일 방송된 5회에서 삼안 E&C라는 작은 세계를 통해 그려진 직장인들의 현실은 “몸은 기껏해야 백 이십 근인데 천근만근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대기업 부장이라는 안정적인 명함을 쥐고 있지만 나를 내치려고 눈에 불을 켠 후배를 상사로 둔 동훈(이선균). 박동운(정해균) 상무의 말대로 “어려도 힘 있다 싶으면 바짝 기고. 앞서서 치고 올라가도 속없이 따라붙고.” 직장생활 좀 하다 보면 이렇게 좀 편하게 갈 수도 있건만, 평생을 반듯하게 물 흐르듯이 살아온 동훈에게는 힘든 일이다.
곧고 바르게, “욕망과 양심 중에서 양심 쪽으로 확 기울어져” 살아가는 동훈이 불쌍하고 안쓰럽게 보이는 ‘나의 아저씨’ 세상. 후배였던 이가 상사가 되면 알아서 기던가, 혹은 좋은 타이밍에 제 발로 내려가지 않으면 주변인의 눈총을 받는다. ‘덜’ 잘난 사람은 ‘더’ 잘난 사람에게 밟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많이 닮아있어 보는 이에게 씁쓸함과 헛헛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 소주를 입에 들이켠 첫 순간처럼.
그러나 이런 퍽퍽한 세상에도 숨 쉴 틈은 분명 존재한다. 술에 취해 도준영(김영민) 대표를 향해 “사석에서는 선배님이라고 해줄 수 있지 않느냐”라고 주정을 부려 동훈을 곤란하게 했지만, 그 시작은 동훈을 향한 안쓰러움이었을 것이 분명한 송과장(서현우). “우리 생각해서 좀 겨주면 안 돼? 아니면 깔끔하게 나가주던가”라면서 이건 모두 못난 동훈 탓이라는 뒷말을 하던 김대리(채동현)의 뺨을 때린 지안(이지은). 그리고 “형한테 돈 받아쓰는 거 부담스러워할까 봐, 일부러 상품권 사서, 어디서 생겼다면서 준 거 다 알아. 돈 벌어서 형 참치 사주고 싶어”라며 동훈의 노고를 알아주는 막내 기훈(송새벽). 이 모든 것들은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걷다 넘어져 다 포기하고 싶던 동훈을 다시 일으킨다.
결국 “내가 오늘은 못 죽어. 비싼 팬티가 아니야”라며 내일로 다시 한 발을 떼는 동훈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래. 다 힘들지. 그래도 다 그렇게 사는 거지’하는 먹먹함이 가슴을 울린다. 삶의 고됨을 잠깐이라도 덜어보고자 한 잔 기울이는 씁쓸한 소주의 끝 맛에서 뜨뜻한 온기를 찾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아저씨’는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치유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매주 수, 목 오후 9시 30분 tvN 방송, 국내 방영 24시간 후 매주 목, 금 오후 9시 45분 tvN 아시아를 통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도 방영된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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