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에는 정부의 시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자유가 법으로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많은 제약이 뒤따랐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학계와 언론을 비롯해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자유를 만끽하게 됐다. 자유가 보장되는 만큼 국가적 관심사가 생기면 백가쟁명식으로 다양한 주장이 제기됐다. 다양한 주장이 합리적으로 조정되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이 오래가고 깊어졌다. 그 결과 국민적 관심사가 생기면 모든 것을 진영의 논리로 재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됐다. 진영이 다르면 상대의 주장을 아예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형국이 일상화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핵은 한반도만이 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국제적 현안이었다. 최근 4월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되면서 각국 간의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하고 열리기로 예정돼 있다. 이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하나의 계기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에 대해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어 오히려 시간을 벌어줄 뿐이라는 비관적 주장과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획기적 기회가 되리라는 낙관적 전망이 맞서고 있다. 아직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않아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양쪽의 주장이 극과 극으로 갈려 합의점을 찾기가 어렵다.
조선 시대 이이는 선조 12년(1579) ‘대사간을 사직하고 겸하여 동서(東西)의 당파를 없앨 것을 진달한 상소’에서 공론의 중요성을 역설한 적이 있다. 이이가 전한 당시의 진영 논리도 오늘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 동서 붕당은 각자의 주장이 옳다고 말했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은 맞는다고 따르기도 하고 틀렸다고 거들떠보지 않기도 했다. 일반 사람도 반은 옳다고 인정하고 반은 그르다고 내치는 형국이라 하나로 합치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귀일지기(歸一之期)의 가능성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이는 모든 사람의 집을 찾아다니며 설명하고 그래도 안 되면 강제로 조정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자칫 사람의 의심을 사 오히려 생각지도 않은 커다란 재앙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이는 공론의 가치를 되돌아보고자 했다. 먼저 공론은 사람의 마음으로 똑같이 옳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론은 누군가가 그러한 결론에 이르고자 의도적으로 도모하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옳다고 여긴다(불모이동시·不謀而同是). 이 과정은 이익으로 유혹하는 것도 아니고 위세로 무섭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삼척동자도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옳은 것이다(비유이리·非誘以利, 비소이위·非所以威, 삼척동자·三尺童子, 역지기시자·亦知其是者, 차내국시야·此乃國是也).
우리는 이이의 상소에도 붕당은 동서로만 갈리지 않고 그 뒤에 더 많은 분파를 겪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영 논리가 득세하게 되자 이이가 말한 삼척동자도 똑같이 옳다고 하는 공론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이이는 상소문에서 진영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로 ‘깊은 식견과 원대한 사려를 하는 선비(심식원려지사·深識遠慮之士)’가 없어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고 하는 중구난방의 상황에 휘둘려 사람들이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것을 진단했다.
이이의 상소문을 오늘날의 말로 바꾸면 압도적 지성을 가진 인재가 이익과 위세를 동원하지 않고 객관적 공정성에 따라 사회적 의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심식원려(深識遠慮)의 공론을 해법으로 제시하면 모든 사람이 그 해법을 존중하게 된다는 논리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영웅의 등장을 희망했다고 할 수 있다. 불행히도 우리 시대에는 그런 영웅도 없고 도모하지 않아도 모두가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불모동시(不謀同是)의 공론도 없다. 하지만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 삼척동자들이 모여 현안을 자유롭게 토론하며 공론을 형성하고 다시 전문가와 연석으로 토론해 공론의 소재를 도출하는 만민공동회를 자발적으로 연다면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