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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선임기자의 무기 이야기] 순양함 전성시대 다시 열릴까

< 35 > "함정 라인업 변화" 예고한 美 해군

1980년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 등장

강력한 대지 공격·요격 등 자랑하지만

"노후…신형 순양함 개발" 목소리 커져

스텔스형 설계·모듈시스템 탑재 계획

'고가 건조비' 압박 뚫고 교체 될지 관심

석양이 지는 아라비아해를 항해하는 타이콘데로가급 7번함(CG-53) 모바일 베이. 강력한 대지 공격력과 탐지 및 요격 능력을 자랑하지 구식 설계인데다 함령이 높아 후속 신형함으로 교체가 추진되고 있다./사진= 미 해군




미국 해군이 함대 구성의 변혁을 추진하고 있다. 연안전투함에서 이지스 순양함은 물론 강습상륙함·항공모함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함정 건조 논의가 한창이다. 변화를 재촉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중국의 부상 등 작전환경 변화와 신기술 개발, 함정 노후화, 예산 압박이 겹쳤다. 미 해군이 과연 원하는 대로 각종 신형 함정을 개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각국의 함정 건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함정은 차기 이지스 순양함.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급을 대체할 신형 순양함 개발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새로운 순양함을 개발·건조·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21세기가 시작하던 무렵부터 고개를 들었으나 번번이 예산 사정에 막히고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과거와 다소 다르다. 함정이 노후화했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 있다.

미해군이 차기 순양함 개발 계획을 접고 건조한 줌월트급 구축함 1번함이 2015년 겨울 최초 시운전에서 대서양의 아침 햇살을 맞으며 서행하고 있다. 부활 움직임을 보이는 차기 순양함의 함형이 줌월트급처럼 극단적인 스텔스성을 택할지, 전통적인 선체로 회귀할지도 관심거리다./사진=위키 미디어


타이콘데로가급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지난 1980년대 초반. 최초의 이지스함으로 각광받았지만 설계가 뛰어난 함정은 아니었다. 함정을 이지스 시스템에 맞게 새로 설계하지 않고 스프루언스(Spruance)급 구축함의 선체에 이지스 시스템을 얹혔다. 스프루언스급은 소련의 잠수함 세력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대잠수함 작전용으로 1972년부터 건조돼 우수한 함정으로 알려졌지만 구조물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동시에 받았다.

타이콘데로가급은 스프루언스보다 더 크고 무거운 구조물로 ‘가분수’ ‘가장 못생긴 군함’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일부 함정에서는 균열이 발견돼 이를 시정하는 과정에서 미 해군이 새로운 알루미늄 합금 기술을 개발하는 부수효과를 거둘 정도로 부실 시비도 많았다. 이러한 논란에도 타이콘데로가급은 모두 27척이 건조돼 22척이 현역을 지키고 있다. 퇴역한 함정들은 수직발사관이 없는 초기형 5척이다. 다시 말해 타이콘데로가급 6번함부터는 수직발사관을 갖고 있는 덕분에 지금껏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다.

타이콘데로가급의 수직발사대에 장착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미국이 개입하는 분쟁지역마다 처음 퍼붓는 무기다. 최근 시리아 공격에도 활용됐다. 이지스 미사일과 연동하는 대공미사일은 미 해군의 핵심 전력자산인 항공모함 전단을 적의 대공 위협으로부터 막아주는 방패다. 한번 도입하거나 건조한 군함을 마르고 닳도록 쓰는 한국 해군이 1980년대 초반 취역한 울산급 호위함을 속속 퇴역시키는 와중에도 미 해군이 울산급과 비슷한 함령의 타이콘데로가급을 운용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타이콘데로가함(CG4-47, 오른쪽) 취역후 스프루언스함(DD-963)이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군항에 나란히 정박중인 모습. 상부 구조물을 다르지만 두 함정은 동일한 선체를 사용한다. 타이콘데로가급의 선체는 1970년대 초반에 설계된 것이어서 현대전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상부 구조물이 지나치게 크고 무거운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사진=미국 문서기록관리청




그러나 언제까지고 노후함을 운용할 수는 없는 상황. 스프루언스급 구축함 30척이 평균 26년차에 퇴역한 반면 동일한 선체를 활용하는 타이콘데로가급은 평균 함령 34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현역이다. 후속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건함 계획이나 일정이 정해진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존 리처드슨 해군참모총장이 나섰다. 외신들에 따르면 리처드슨 총장은 지난주 군사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후속 순양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세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첫째는 시기와 함정의 형태. 리처드슨 총장은 차기 호위함 계획(FFX)이 진행되며 순양함에 대한 연구도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미 해군이 연안전투함의 성능을 확대 발전시킨 신형 프리키트함 개발에는 5개 회사가 각각의 함정을 개발 중으로 오는 2019년 말 함정이 선정될 예정이다. 초도함 인도 시기는 2025년으로 잡혀 있다. 리처드슨 총장은 딱히 어떤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직시하지는 않았으나 신형 프리키트함의 형태가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순양함의 함형이 줌월트급처럼 극단적인 스텔스 설계가 될지, 전통적인 함형이 될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성능. 미 해군은 줌월트급의 전투정보처리 및 지휘체계를 원하고 있다. 비싸지만 차기 순양함에서 대량생산되면 단가는 낮아질 수 있다. 리처드슨 총장은 차기 순양함이 레이저 무기와 레일건, 성능이 향상된 레이더와 전자장비 등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발전 용량이 커야 한다는 얘기다. 함정의 크기가 작지 않다는 의미도 담겼다. 함의 크기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샌안토니오(San Antonio)급 도크형 상륙함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기하고 있다.

이지스함에 버금하는 탐지 능력과 함께 최첨단 전투지휘 시스템을 갖춘 이 함정의 건조사인 노스롭그루먼 해양 부문은 파생형으로 병원선과 민사작전함·통합지휘함과 함께 탄도미사일 방어용 미사일 탑재함 등을 제안하며 건함비용을 30%가량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순양함으로 쓰기에는 2만5,300톤이라는 덩치가 너무 크고 척당 건조비도 20억달러로 이지스함보다 비싸다. 결정적으로 속도가 시속 22노트로 30노트 이상인 항모전단과 전속력 함대 기동이 불가능하다.

세 번째는 모듈화. 같은 순양함이라도 임무형 모듈 시스템을 개발해 건전지나 전동 드릴에서 공구를 갈아 끼우듯 함정 운용의 탄력성과 가용성을 높일 계획이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신기술을 언제라도 채용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미 해군은 차기 호위함 설계에서부터 이 개념을 적극 도입할 계획이다. 차기 순양함에서는 보편적인 기술이 되고, 미 해군은 더욱 기능화하고 훈련과 작전에 드는 비용도 보다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돈. 최신 기술에 강한 전력(電力), 최첨단 시스템을 갖추려면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 해군은 차기 프리키트함뿐 아니라 최신형 갑판형 강습상륙함인 아메리카(America)급을 F-35B 전투기 탑재용 준항모로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아메리카급 한 척의 건조비는 34억달러에 달한다. 항공모함도 초대형만 운용할 게 아니라 영국의 엘리자베스급과 비슷한 7만톤을 도입해 작은 분쟁에 보다 경제적으로 대응하는 방안도 논의되기 시작했다. 모든 게 돈이다. 미국이 이를 추진할 경제적 여력이 되고 함대 구성의 중추 함정들이 교체된다면 세계 각국의 건함 계획도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바다에 미국발 해군 전투함 변혁의 풍랑이 일지 주목된다.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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