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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날] 인류의 삶에 공헌한 5가지 약 이야기

21일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제정된 ‘과학의 날’이다. 과학이라고 하면 컴퓨터나 자동차, 스마트폰 등 우리 삶을 바꾸고 있는 첨단 기술들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고 접하는 의약품 역시 오랜 연구개발을 통해 일궈낸 과학의 결정체 중 하나다. 수많은 약물들이 인류를 죽음에서 구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중대한 역할을 해왔지만 그중에서도 발견 전후로 인류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거나 수많은 사람들의 삶·치료의 방식 및 병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의약품 5가지를 골라봤다.

1. 페니실린(항생제)

최근 항생제 내성을 지닌 슈퍼박테리아나 몸에 이로운 세균(유익균) 등이 화두가 되며 항생제 사용을 꺼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지만, 인류의 수명 연장에 획기적 공로를 한 약물 중 하나로 항생제를 꼽는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각종 연구들은 항생제의 발견 및 사용이 적어도 8,000만명의 목숨을 구했으며, 항생제가 없었다면 오늘날 인구의 75%는 살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계산한다. 항생제는 폐렴, 성홍열, 귀·인후·피부 감염 등의 질환을 치료하며 각종 감염병의 일차 치료제로도 쓰인다.

최초의 공식 항생제는 1928년 스코틀랜드 세균 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이다. 플레밍 박사는 이 발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5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다. 페니실린은 1942년부터 공식 사용됐는데 2010년 기준으로 73억 이상의 페니실린이 투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슐린 치료전 환자(왼쪽)와 치료 후 환자(오른쪽)/제공=한국릴리




2. 인슐린

당뇨병은 주변 어르신 한 두 명은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만성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약 100년 전만 하더라도 한번 걸리면 속수무책 죽는 날만 기다려야 하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환자들은 몸속 혈당이 이상 증가하는 일을 막기 위해 하루 식사량을 400kcal(성인 1인 권장 칼로리는 2,000~2,700kcal) 이하로 제한하는 등 거의 굶다시피 해야 했다.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써도 환자들은 겨우 몇 년 더 살 수 있을 뿐이었다.

당뇨병이 생명을 위협하는 난치병에서 관리 가능한 질환이 된 것은 1923년 인슐린이 개발되면서다. 인슐린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혈당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프레드릭 벤팅 박사는 당뇨에 걸린 강아지에게 췌장추출물을 주사하는 실험을 통해 인슐린의 존재와 효과를 입증했고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 릴리에서 연구개발을 총괄하던 클라우스 박사와 함께 품질 향상과 대량 생산 등의 상용화에 성공한다.

당뇨 환자는 2014년 기준 4억 2,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슐린은 현재도 당뇨 치료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약물이다. 최근 많은 제약사들은 인슐린의 효과를 늘려 최소 투약으로 보다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진행 중인 WHO의 소아마비 백신 접종 프로그램/출처=WHO 홈페이지


3. 백신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을 현대 의학의 가장 큰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는다. WHO는 세계적으로 제공되는 예방 접종 덕분에 2010년에서 2015년 동안 적어도 1,000만 명이 죽음의 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고 추정한다.

백신은 감염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를 약하게 만든 후 몸속에 주입함으로써 인체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감염병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1796년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소의 젖을 짜다가 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잘 걸리지 않거나 가볍게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실험을 실시, 천연두 예방 백신의 물꼬를 텄다. 이어 1873년 프랑스 화학자 파스퇴르가 닭을 통한 실험을 통해 1880년 콜레라 백신을 개발했고 이후 디프테리아, 파상풍, 탄저균, 광견병, 백일해, 풍진 백신 등이 속속 개발됐다.



특히 20세기 3억 명을 감염시키고 이중 3분의 1을 사망까지 이르게 했던 공포의 질병 천연두와 세계에서 가장 큰 장애 원인 중 하나였던 소아마비의 경우 백신 덕분에 인류가 이겨낸 대표적 질병들이다. 1979년 WHO는 백신과 예방접종 덕에 천연두가 세계에서 사라졌음을 공식 선언했다. 소아마비 역시 대부분 국가에서 박멸된 것으로 기록되지만 아직 바이러스가 남아있기에 현재 모든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받도록 권고되고 있다.

한편 정복하지 못한 질병(감염병)에 대한 백신 개발은 현재 진행형이며 많은 과학자들은 에이즈(AIDS), 암 등의 치명적 질병 역시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연구개발에 매진 중이다.

4. 피임약

피임약은 비록 생명에 위협을 주는 치명적 질병 등을 퇴치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여성의 삶을 크게 진보시킨 약물로 꼽힌다. 1957년 피임약이 처음 등장하기 전까지 여성들은 원치 않는 출산을 경험해야 했으며 그 결과 때때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잦았다.

피임약은 간호사이자 여성 운동가인 마가렛 생어에 의해 개발됐다. 그는 계획적인 출산이 여성의 인권을 높일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 생각해 1916년부터 본격적인 산아제한 운동을 시작했고 1936년 미국 법원에 의해 피임 합법화를 이뤄낸다. 이후 생물학자이자 여성 운동가인 캐서린 맥코믹의 지원을 받아 내분비학자 그레고리 핀커스와 함께 피임약 개발을 시작했으며 1957년 미국식품의약국(FDA)로부터 인류 최초의 피임약을 시판 허가 받았다. 물론 다른 피임법도 있지만 피임약의 경우 여성이 임신을 원하지 않을 때 스스로 안전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 해방 운동에 크게 기여한 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라진’의 미국 광고


5. 클로르프로마진(상품명 소라진)

1953년 프랑스 정신의학자 장 지그왈드에 의해 개발된 클로르프로마진은 최초의 항정신병 약물이며, 정신병 관리에 혁명을 일으킨 의약품으로 꼽힌다. 정신을 가눌 수 없는 탓에 병동에 격리 수용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신경증 환자들이 약물을 복용함으로써 평온한 상태를 되찾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954년 ‘소라진’이라는 상품명으로 출시된 약물은 10여 년 만에 5,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처방되는 등 정신 질환의 약물 치료라는 개념을 빠르게 전파시켰다. 소라진의 업적은 환자를 구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신경병이나 정신과적 질환이 타고난 본성이나 양육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 불균형이나 호르몬 교란 등에 의해 발병할 수 있으며 약물로도 충분히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과학자들이 정신 분열증, 우울증 등의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각종 의약품의 연구개발에 몰두하게끔 하는 단초가 된 셈이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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