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제조업체에 재직 중인 이모 대리는 최근 대형포털에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을 올렸다가 고소를 당했다. 이씨는 “채용공고가 떴길래 회사 경험담을 댓글로 마음 놓고 달았다가 회사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며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에 대해 고소하는 행위는 회사의 갑질”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그는 회사에 합의금을 주고 사직해야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직장 경험담과 회사 평판을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되자 일부 기업이 회사에 부정적인 글을 올린 직원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제 입막음에 나서고 있다. 재직자들은 단순 경험담까지 소송으로 대응하는 회사의 행태를 두고 전형적인 ‘갑질’이라고 지적한다.
20일 서울 구로경찰서에 따르면 최근 W저축은행 전·현직 재직자 7명은 한 채용 포털에 회사 평판을 허위로 작성했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배울 게 없는 조직문화, 중구난방식 인사 관리와 야근·주말 출근이 일상인 회사’ 등으로 회사를 평가한 게 화근이 됐다.
구로경찰서 관계자는 “해당 사건은 작성자 신원을 파악하기 어렵고 재직자 글이라 비방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기소유예 처분했다”며 “관내에 중소·벤처기업이 몰려 있다보니 포털 댓글이나 리뷰에 예민한 일부 회사가 직원을 고소하는 사례가 잦다”고 말했다.
인턴으로 일했던 기업으로부터 소송 협박을 당했다는 취업준비생 A군은 “근로계약서 미교부, 잦은 야근, 100만원 남짓한 인턴 월급 등 직접 겪은 일을 공개했는데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기업은 회사 관련 글의 작성자를 색출하기 위해 ‘IP를 추적하겠다’, ‘경찰에 수사 협조를 의뢰하겠다’며 직원들을 압박하기도 한다. 그러면 상당수 작성자들은 자진해서 회사에 리뷰 사실을 털어놓기 때문이다.
김지예 잡플래닛 이사는 “지난 1년간 (회사의) 고소 협박에 대해 문의해 온 직장인만 60명에 이른다”면서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기업체 오너들이 부정적인 평가를 참지 못하고 온라인 서비스업체 사무실에 직접 찾아와 항의하는 사례도 매달 1~2건은 발생한다”며 “작성자 개인 신원은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잡플래닛)도 확인이 불가능해 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 요청이 와도 넘길 수가 없다”고 전했다.
최근 온라인에서 오너 갑질이나 사내 성범죄에 대한 폭로가 잇따르면서 단순 입막음을 넘어 평판 조작까지 강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직원들에게 순번을 정해 회사에 대한 우호적인 리뷰를 작성하게 뒤 경영진에 보고하는 방식이다. 한 외국계 유아용품 업체에 다니는 김모씨는 “일부 임원들은 연차가 낮은 직원들을 불러 자신이 보는 앞에서 회사 관련 우호적인 리뷰를 쓰도록 한다”고 하소연했다.
/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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