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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喪己失性 (가치가 전도돼 자신을 잃어버리고 본성을 놓친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평창동계올림픽은 대회가 끝난 뒤 여러 가지 화제를 낳았다. 여자 컬링팀의 선전으로 컬링은 올림픽 전에 소수만 알던 스포츠에서 많은 사람이 즐기고 싶은 스포츠로 거듭나게 됐다. ‘빛의 속도’로 달리는 스켈레톤에서 윤성빈이 우승하면서 메달 종목의 외연을 넓히기도 했다. 그 바람에 동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렇게 반길 만한 소식에도 스피드스케이트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의 왕따 논란, 매스스타트 경기에서의 우승 후보자를 위한 페이스메이커 작전 실행, 그리고 쇼트트랙 선수에 대한 감독의 폭행 등이 빙상계 내부를 벗어나 국민들이 알게 되고 세계로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로써 한국 스포츠 문화의 후진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체육회와 합동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을 대상으로 특정감사를 해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를 보면 그간 떠돌던 이야기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는 없고 더 자세하게 알려진 소식이 있다. 대표팀 코치가 진천선수촌 훈련 도중 선수를 밀폐된 공간에서 발과 주먹으로 수십 차례 때린 것으로 확인됐고 빙상 스포츠 스타인 이승훈 선수도 후배 폭행 혐의를 받게 됐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체육계 안팎으로 끊임없이 떠돌던 혐의를 자체적으로 걸러내지 못하고 외부의 특정 감사를 받고서야 사실이 알려졌으니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외부 감사로 시시비비가 분명하게 밝혀졌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자정능력을 갖지 못해 외부 감사를 받게 됐으니 그만큼 안타깝다. 현대 스포츠는 마냥 좋아서 신체의 제약을 극복하고 인간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단계를 벗어났다. 스포츠가 흥행에 성공하면 엄청난 부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사회의 어떤 분야도 부럽지 않은 ‘스포츠 산업’이 됐고 TV를 비롯해 다양한 영상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해 깜짝 스타가 등장할 수 있는 ‘예술 공연’이 됐다. 이렇다 보니 스포츠는 스포츠만으로 즐기는 시대를 넘어 산업과 예술의 특성을 공유하는 시대의 총아가 됐다.



스포츠가 스포츠에 제한되지 않고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창을 가지게 됐으면 스포츠에 종사하는 선수와 지도자를 비롯해 체육인은 경기력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수많은 관객이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감동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의 빛을 가리는 그림자를 보면 몇몇 체육인의 언행은 변화된 21세기의 스포츠 위상에 걸맞지 않다.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될 수 있다. 장자의 말을 빌린다면 “외물에 가려져 자신을 잃어버리고 세속적 가치에 어두워 본성을 놓쳐버렸다(상기어물·喪己於物, 실성어속·失性於俗)”고 할 수 있다. 장자는 사람이 속과 물이 합쳐진 속물이 돼가면서 진실한 자신과 본성이 너덜너덜해졌다고 봤다. 이에 장자는 헤진 본성을 기워 고쳐야 한다며 선성(繕性)의 개념을 제시했다. 우리의 본성을 돌아보지 않으면 빙상계에서 있었던 일은 그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

문제가 알려지자 몇몇 사람들은 왜 혐의 있는 선수를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빙상 스포츠의 선수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 선수를 제명하는 등 공정하게 처벌하게 되면 올림픽을 비롯해 국제적 경기에 출전할 선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빙상계는 몇몇 체육인이 물의를 일으키더라도 일벌백계하기보다 쉬쉬하며 문제를 덮고 빨리 끝내려고 해온 것이다. 결국 과정이야 어떠하든 성적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체육계의 성적지상주의와 우승해 국위를 선양하면 다른 문제는 따지지 않는 스포츠 애국주의가 평창올림픽에서도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상기실성(喪己失性)이 민낯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우리는 타인의 부당한 희생으로 얻게 되는 금메달의 영광을 누리지 않고 노메달이더라도 정정당당하게 경기한 선수를 격려하고 지원할 수 있는 풍토를 키워야 한다. 그러면 스포츠에서 국민과 국익을 볼모로 벌이는 희생과 폭행이 줄어들어 공정한 스포츠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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