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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 지킵시다] 술꾼 구타에 구급대원 목숨 잃어…'주폭의 火'까지 진화해야 하나요

<8> 안전 위협받는 안전지킴이

작년 구급대원 폭행 사건 중

취객에 의한 상해 92% 차지

"잠긴문 열어달라"고 호출

구조대를 심부름꾼 취급도

'소방관 활동은 사회안전용'

선진화 된 '시민의식' 필요







청주소방서 소방관인 119구급대원 A씨는 지난해 겪은 황당한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지난해 9월13일 오전4시32분께 청주시 흥덕구 한 상가 인근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주민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A씨는 쓰러져 있던 B(37)씨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흔들어 깨웠는데 갑자기 욕설을 하며 폭행이 시작됐다. 이 사고로 구급대원 A씨는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청주소방서 관계자는 “B씨는 소방기본법 위반과 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돼 최근 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구급활동 중 폭행 피해를 당한 구급대원은 167명이나 됐다. 구급대원은 특히 구급차에서 폭행에 취약하다. 전북 익산에서 술에 취해 도로 한복판에 쓰러져 있던 윤모(47)씨를 구조하려던 여성 구급대원 강모(51)씨는 구급차에서 구타를 당한 후 한 달 만인 이달 1일 뇌출혈로 끝내 숨지기도 했다.

동물포획 중인 소방대원


지난해 구급대원 폭행 167건 중 대부분인 92%, 154건의 가해자가 음주 상태였다. 이른바 ‘주폭(酒暴)’ 사건인 셈이다. 그만큼 양심의 가책도 없이 구급대원에게 화풀이성으로 피해를 준 셈이다. ‘안전 지킴이’인 119구급대원의 안전이 오히려 위협받고 있다.

이는 소방관의 공공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낮은 인식과 함께 정부의 대응 부족도 한몫을 했다는 평가다. 소방관을 ‘공복(公僕)’이 아닌 ‘사복(私僕)’으로 인식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전북 고창에 사는 만성질환자 김모(62)씨는 지난 2016년 203번이나 구급차 출동을 요구했다. 주말 빼고 하루 한 번씩이다. 고창소방서 관계자는 “김씨에게 연락을 받으면 비응급환자임을 주지시키며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설득한다”고 말했다

119구급대원만이 아니다. 구조대원·소방대원의 안전도 심각하다. 3월30일 여성소방관·교육생 등 3명은 충남 아산시 국도에 묶여 있는 유기견을 구조해달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25톤 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사소한 일에 소방관들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소방청에서 지난해 전국 구조출동 건수 80만5,194건을 인명구조와 관계되는 ‘구조활동’과 일반 ‘생활안전’ 출동 건수로 나눠 조사했더니, 생활안전 출동 건수가 42만3,055건으로 절반이 넘는 52.5%에 달했다.

벌집제거 중인 소방대원




119구조대의 전체 출동에서 벌집 제거가 24%로 가장 많았다. 이어 동물포획 17%, 화재 13%, 교통 9%, 대문 등 잠금 개방이 8%였다. 특히 동물포획 2만5,423건 중 고양이·조류·고라니 등 단순출동도 5만961건(40.6%)이나 돼 소방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소방구급 안전 분야가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공공재인 119구조대에 대해 일부가 서비스를 독점하려 하면서 사회 전체의 이익이 침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에 29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의 경우 화재가 발생하던 순간 제천의 119구조대원들은 주택에 달린 고드름을 제거하고 있었다. 이들이 소방서에서 대기했더라면 더 적절히 출동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소방차나 구급차 등 긴급자동차에 양보하지 않는 것이나 불법주차도 소방관뿐 아니라 시민의 안전까지 위협한다.

현관문을 열고 있는 소방대원


정부의 대응도 미흡하다. 119구급차는 정원 3명인 규정을 무시하고 2명으로 출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력부족이 이유다. 사소한 문제에까지 출동하는 것은 결국 민원 발생에 대한 소극적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최혜경 을지대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구급대원 인원을 보강하는 것과 함께 국민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며 “비응급 환자는 구급차를 부르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규제를 강화하면서 소방관 안전 확보에 나섰다. 소방청은 올 3월28일 ‘비긴급 생활안전출동 거절 세부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소방관이 출동할 필요가 없는 생활안전 분야에 대해서는 신고를 거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4월21~30일 일 평균 생활안전 출동 건수는 521건으로 6개월 전인 지난해 10월21~30일의 일 평균 875건보다 무려 40%가 줄었다.

고드름 제거 중인 소방대원


이와 함께 긴급자동차 양보 의무 단속 건수도 지난해 130건으로 2016년의 253건에 비해 많이 줄었다. 과태료 상한선을 2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대폭 올린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구급대원 폭행 피해 발생은 167건으로 전년도의 199건에 비해 감소했는데 이것도 실형 비율을 높이는 등 ‘무관용 원칙’에 따른 엄격한 법 적용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 “소방관을 개인 심부름꾼으로 취급하는 일을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태근 경상북도소방본부 긴급구조종합훈련 평가위원은 “소방구급의 수준이 이제 선진국의 척도”라며 “소방관 활동은 사회안전을 위한 세금으로 충당하는 공공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사진제공=소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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