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 대세다. 얼마 전에는 한 러시아 청년이 행불선원을 찾아왔다. 잠깐 우리나라를 방문했는데 참선에 큰 관심이 있어 인터넷 검색해 찾아왔다는 것이다. 사실 명상과 참선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관찰의 대상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명상은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참선은 그 관찰자를 관찰한다. 둘 다 밖으로 향한 시선을 내부로 돌려 자신을 돌이켜보는 것이다.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수행인 참선에도 네 가지가 있다. 행선·주선·좌선·와선이 그것이다. 행선은 걸어가며 참선하는 것이고 주선은 머무르며, 좌선은 앉아서, 와선은 누워서 하는 것이다.
첫째는 행선(行禪)이다. 번잡한 일상생활을 벗어나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먼저 행선을 실시한다. 일렬로 줄지어 천천히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한다. 이때 화두를 발바닥에 두고 한 발자국씩 디딜 때마다 ‘마하’ ‘반야’ ‘바라’ ‘미일’이라고 염한다. 그 소리를 듣는다.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다.
둘째는 주선(住禪)이다.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 장궤합장하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한다. 역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두 번씩 큰 소리로 주거니 받거니 염하고 화답한다. 장궤합장은 집중에 매우 효과적이다. 아울러 다른 이들이 번갈아 염하는 소리를 귀담아듣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수행법이다. 마무리하며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고 들을 때 이 성품이 어떤 것인가, 어떻게 생겼을까’ 복창하도록 한다.
셋째는 좌선(坐禪)이다. 가부좌를 틀고 좌선을 한다. 온몸에서 긴장을 풀고 허리만 반듯이 펴준다. 입은 다물고 코로 숨을 쉬되 시작과 마무리 시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띠도록 한다. 시선은 정면을 바라본 상태에서 살짝 아래로 떨어뜨린다. 눈은 반쯤 열거나 살포시 감아도 좋지만 마음의 눈은 항상 떠 있어야 한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며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떠 있는 것이며 깨어 있는 것이다. 앉으나 서나, 오나가나, 자나 깨나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면서 그 소리를 듣도록 한다.
넷째는 와선(臥禪)이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편히 눕도록 한다. 다리·팔·몸통·머리의 순으로 내려놓도록 한다. 몸을 내려놓고 나서 마음을 내려놓도록 한다. 마음을 코 밑에 집중하고 숨을 들이쉬며 ‘마하’, 내쉬며 ‘반야’, 다시 들이쉬며 ‘바라’, 내쉬며 ‘미일’ 관찰하도록 한다. 일어나기에 앞서 태중아기 자세를 취하도록 한 후 깨어나며 다시 태어나는 첫 일성으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한다. 마무리하며 ‘마하는 큼이요, 반야는 밝음이요, 바라밀은 충만함이다. 마하반야바라밀이 나요,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나는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하다’ 복창하도록 한다.
최근 참선실습을 진행하면서 먼저 ‘붓다의 노래’를 윤독(輪讀·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읽음)했다. 붓다의 가르침을 108게송으로 요약한 책이 ‘붓다의 노래’다. 한마디로 초기 불교경전의 핵심 게송(찬송가)만 모은 것이다. 이 108게송을 함께 둘러앉아 돌아가며 한 게송씩 읽어나가다 보니 그냥 혼자서 읽을 때와는 달리 마치 붓다의 육성을 듣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몇몇 분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감격의 눈물이었다. 그중 한 분은 불자도 아니건만 ‘붓다의 노래’ 강설집인 ‘붓다, 기쁨의 노래’를 읽고 가슴이 뻥 뚫려 찾아왔다고 한다.
석가세존 당시에도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열린 것은 게송을 통해서다. 게송을 듣고 마음의 큰 변화를 맛보았던 것이다. 현대에도 수행을 열심히 하는 이는 많지만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 것은 게송을 간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컨대 바히야는 길거리에 선 채로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아는 것을 알기만 하라. 그럴 때 거기에 그대는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라고 하는 간단명료한 붓다의 게송을 듣고 곧바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또한 참선의 중흥조인 육조 혜능 선사도 나무를 팔고 돌아가던 중 ‘금강경’의 게송을 듣고 마음이 열렸다.
이렇듯 게송이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는 반면 참선은 궁극적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서 최초로 참선을 중국에 전한 보리달마의 가르침을 ‘대승안심법문(大乘安心法門)’이라고 했던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