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실명(失明)의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에너지였고 꿋꿋이 살도록 이끌어 준 동반자입니다”
7살 때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소년은 음악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찾았다. 그리고 40세에 시각장애인 연주자들로 구성된 세계 유일의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이렇게 탄생한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는 지난 11년간 국내외에서 300회가 넘는 공연을 했다.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비장애인에게 희망의 선율을 선사하며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온 이상재(51·사진)단장(나사렛대 관현악과 교수).
이 교수는 “국내 장애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은 척박하지만 시련을 딛고 믿고 따라와준 단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1급인 그에게는‘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달리 많이 따라 붙는다. 지난 90년대초 당시 시각장애인으로는 쉽지 않았던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97년 미국 3대 음악대학인 피바디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시각 장애인의 박사학위 취득은 개교 140년만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돕는 아르바이트학생을 붙여주는 등 학교의 지원도 있었지만 학위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 교수는 “점자자료를 찾으며 논문을 썼던 6개월동안 하루 2시간 반 이상을 자 본적이 없었다”며 “잠 부족으로 환청까지 들렸지만 비싼 학비를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을 떠올리면 중단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이지만 뛰어난 클라리넷 연주실력으로 명성을 얻는 그는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300회가 넘는 독주회를 열었다. “연주회를 위해 해외 20여개국을 50회 넘게 방문했지요. 어디를 가든 환영이었습니다. 그래서 실력발휘를 할 수 없는 국내 시각장애 연주자들을 모아 공연을 하자는 생각에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지요”
2007년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는 시각장애 연주자 12명, 비장애 연주자 4명으로 출발했다. 비장애연주자는 시각장애인이 주로 다루지 않는 콘트라베이스, 금관악기 등을 지원하기 위해 합류했다. 합주는 그야말로 난관의 연속이었다. 연주자들이 지휘자는 물론 단원끼리도 볼 수 없는 탓에 점자악보로 연주곡을 통째로 외우고 한 곡당 연습을 수백번 반복해야 했다. 연습할 때는 이 교수가 드럼스틱으로 의자를 두드려가며 지휘하고 무대에서 연주할 때는 나지막한 구령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이 교수는 “서로 눈빛을 교환할 수 없지만 서로를 믿고 연주한다”고 설명했다. 뛰어난 하모니로 공연횟수는 늘었다. 2011년 10월과 2015년 두차례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도 가졌다.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 공연은 카네기홀 개관 120년만에 처음이다.
오케스트라는 성공했지만 지금까지 이 교수는 홀로 관현악단을 이끌어왔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각장애인 연주자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건설관리기업 한미글로벌이 연습실 임대료를 지원해준 점이 그나마 이 교수의 위안거리다.
이 교수는 “그동안 오케스트라를 탈퇴한 음악전공자중 2명은 결국 안마사의 길을 택했을 정도로 장애예술인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전문적 지식을 갖춘 장애인들이 예술활동을 포기하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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