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적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 이타적 자살 등 최근 업무상 재해로 새롭게 인정되는 법원의 판례가 많아지고 있다. 업무상 재해의 인정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점차 ‘건강권’도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로 인식되는 추세다.
23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대구 지역 구청 공무원으로 30년간 근무한 A씨는 민원 대응 등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왼쪽 눈의 망막을 잃었다며 공무원연금공단에 보상금을 청구했다. 공무원연금공단 측은 질병이 생기기 직전 6개월 동안은 초과근무시간이 많지 않고 업무를 직접적인 발병 원인으로 보기 힘들다며 거부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공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의학적·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사실을 통해 입증하면 된다”며 “예전에는 기저질환이 없었던 A씨가 업무 스트레스를 받은 후 발병했으므로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봤다. 업무 스트레스와 질병 간 관계를 입증하는 방법이 완화된 셈이다.
회사 사정상 동료들을 해고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책임자가 이를 고민하다가 목숨을 끊은 사례도 업무상 재해로 올해 첫 인정됐다. 검침회사에서 책임자로 근무하던 B씨는 지난 2015년 원격검침 시스템 도입으로 인해 구조조정 대상 동료를 선정해야 하자 자살했고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다. 공단은 “B씨의 자살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볼수없다”며 거부했으나, 법원은 “이타적 자살은 업무상 재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B씨는 억울하고 막막한 심리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직장 내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 회식이나 회사 축구대회 등에서 발생한 상해도 업무상 재해라는 판결이 잇따르는 추세다. 법원 측은 “회식이나 친목운동경기 참여에 강제성이 없고 근무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아도, 회사의 직원으로 참여했으므로 업무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업무상 재해 인정은 노동자의 건강권과 직결된다. 현재 노동자의 건강권이 헌법에 명시돼 있지는 않다. 다만 올해 3월 청와대가 공개한 대통령 개헌안에 ‘건강권’이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로 신설됐고, 법조계에서도 이를 공감하는 분위기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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