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기자가 찾은 오사카 도톤보리와 신사이바시를 잇는 다리인 ‘난바바시’. 이곳은 1935년 오사카 최초의 네온사인 광고판 ‘구리코 아저씨’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다리 아래쪽에는 수상택시를 탄 관광객들이 손을 흔들며 관광지의 여유를 풍겨내고 있었다. 돔 형태의 독특한 양식인 신사이바시 아케이드로 들어서면 H&M을 비롯해 온갖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선물 가게, 드럭스토어, 뷰티 브랜드 등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걷기만 해도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북적대는 젊은이들 중 한국인과 중국인이 거의 70%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곳에서 만난 30대 회사원 김모씨는 “일본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를 좋은 가격에 ‘건졌다’”면서 “곳곳의 스포츠 매장을 돌면서 ‘온리(only) 일본’ 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사실 신사이바시는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중심지이지만 5~6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활발한 모습이 아니었다. 이곳이 현재의 모습을 찾게 된 것은 규제가 아닌 소비자 중심의 정책으로 자율경쟁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제로섬 게임을 통한 ‘공망’이 아닌 각자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공생’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 정부가 잃어버린 20년을 되찾기 위해 규제 대신 지원책으로 방향을 선회해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을 빼앗아 가고 있다”며 “그동안 한국 정부는 중소상인 보호라는 명목으로 표심만을 의식해 관광 수요를 떨어뜨림과 동시에 다수의 소비자에게 피해를 떠안겼다”고 꼬집었다.
◇다시 살아난 쇼핑 거리 ‘신사이바시’=신사이바시는 모든 상업시설이 집중돼 있는 우메다 상권에 관광객과 소비자를 빼앗겨 당시 ‘죽은 거리’로 불렸다. 우메다는 일본 오사카시 기타구의 상업과 업무지구다. 한큐우메다·미도스지선우메다·JR우메다 등 3개의 철도노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신사이바시 상점가 인근의 다이마루백화점·다카시마야백화점·도큐핸즈 등 대기업 유통 업체와 소상공인들은 생존을 위해 ‘경쟁’과 ‘대결’이 아니라 ‘자율경쟁하의 파트너십’을 선택했다. 이를 위해 이들은 함께 전단지를 만들고 거리를 꾸미고 홍보를 하면서 신사이바시를 오사카 최고의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여기에는 규제가 아닌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시장경제주의’에 충실한 일본식 방임주의도 뒷받침했다.
실제로 대형 드럭스토어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을 막지 않고 시장경쟁에 맡겨뒀고 대신 민간이 손을 내밀면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상점가를 살리기 위한 이벤트를 만들면 지원해주기도 했다. 관광객들이 편리한 쇼핑을 할 수 있도록 2~3년 전부터는 모든 상점에서 ‘택스 프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미노루 기타쓰지 도톤보리 사무국장은 “대형 유통 업체와 소상공인들이 공동사업을 할 때나 쇼핑 아케이드를 새로 만들 때도 일본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금을 지원해준다”며 “대형자본의 드럭스토어가 아닌 영세한 드럭스토어의 경우 택스 프리를 쉽게 해줄 수 없어 지자체의 지원 아래 한군데에 모여 일괄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규제 대신 쇼핑 매력도 높여 관광객 유인=일본도 과거에는 대형업체의 출점을 억제하는 ‘대규모소매점입지법(대점법)’이 있었다. 지난 1973년에 제정된 이 법과 함께 ‘중소소매상업진흥법’도 시행해 중소소매점이 대형매장에 대항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하지만 대형업체와 소매업체 간 갈등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고 1980년대 들어 미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이 심화하면서 미국의 요구로 2000년 이 법은 수명을 다했다.
대신 정부는 중심시가지활성화법·대형가게입지법·개정도시계획법 등을 만들어 중소소매점 진흥을 위해 도시재생에 나섰고 중소소매점이 공동체 중심이 되도록 도왔다. 이 같은 규제 완화와 도시재생이 맞물려 현재의 일본 유통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쿄만 놓고 봐도 오픈한 지 벌써 1년이 넘은 ‘긴자식스’는 명물이 됐다. ‘도쿄 미드타운 히비야’ 등을 앞세워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쇼핑 블랙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골목상권 프레임에 갇혀 있는 상태다.
가토 쓰카사 오사카시립대 교수는 “일본 정부는 철저히 구성원들이 함께 권리를 누리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생구도에만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오사카=심희정기자 yvett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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