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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동맹도 없는 경제 전쟁





미국과 캐나다의 광활하지만 자유로운 국경은 양국 동맹의 상징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비방위(undepended) 국경’으로 본토와 알래스카를 합치면 길이는 1만1,000㎞가 넘는다. 휴전선의 45배에 달하는데 철책이나 초소는 전혀 없고 출입국 심사를 위한 국경 통과소가 간간이 있을 뿐이다. 과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종종 캐나다의 입장을 묻지 않았는데 보나 마나 미국과 같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자존심 상한 캐나다가 항의한 일도 있지만 대부분 그냥 넘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런 캐나다에도 예외 없이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캐나다 철강이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미국 내에서조차 비웃음을 샀지만 강행했다. 핫바지로 전락한 캐나다는 이달 초 퀘벡에서 주최한 G7 정상회의에서 독일·프랑스 등과 손잡고 미국의 보호무역을 강하게 성토하며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해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아님을 보여줬다. 미국은 무방비 상태의 캐나다에 선수를 치고도 반격은 기분이 나빴는지 백악관 고위 참모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향해 “지옥에 자리가 있을 것”이라며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미국이 중국을 정조준해 일으킨 글로벌 무역전쟁은 반년이 안 돼 동맹국도 가리지 않는 살벌한 양상으로 확전되고 있다. 러시아의 서진에 맞서 70여년간 유지돼온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대서양 동맹도 관세 보복전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트럼프 정부는 유럽산 철강에 이어 자동차에도 무역장벽을 쌓을 태세고 EU는 미국을 대표하는 청바지나 할리데이비슨 같은 오토바이에 고율 관세를 매겨 트럼프 대통령의 아픈 곳을 바늘로 콕콕 찌르듯 공격하고 있다.

동맹국 간의 무역전쟁이 ‘안면 몰수’ 지경이니 사실상 적대국인 미중 간 경제전쟁이 얼마나 험악할지는 명약관화하다. 미국이 다음달 6일부터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하자 중국이 ‘같은 날, 같은 규모’의 보복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양국 간 전면전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는 것보다 물러서는 것을 싫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모든 중국 수출품에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경고했고 무역에서 총알이 부족한 중국은 미국 국채 매각 등 통화전쟁으로 전선을 넓히는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이 일방 독주의 무역전쟁을 촉발하며 날린 관세 폭탄과 그 유탄까지 맞으며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한국이다. 하지만 캐나다는커녕 동남아시아나 중남미 신흥국만큼도 미국에 반격을 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의 처지다. 당면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벨상 수상자로 트럼프를 밀어줘야 할 판국임을 잘 아는 한국 기업과 기업인들은 정부가 무역전쟁에서 비빌 언덕이 돼줄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한 지 오래다. 그저 날아오는 포탄과 파편을 최대한 피해가며 참호 속 진지전으로 언젠가 돌아올 기회를 엿보는 형국이다.

미중 당국이 무역전쟁을 피할 방편의 하나로 한국산 반도체를 희생양 삼아 협상을 도모한다는 소식에 대응 방안을 묻자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담담하게 “다른 업계보다 그래도 우리 맷집이 더 셀 것”이라고 답했다. 비장한 투지마저 느껴지는 그의 말처럼 사정은 반도체 회사들이 좀 나은 편이어서 LG·현대차·포스코·롯데 같은 대기업의 해외주재원들도 요즘은 밤낮없이 발로 뛰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추가 관세 부담을 소화해내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면 주 52시간 근무체제에 어떻게 적응할지 모르겠다”는 그들의 농담은 무역전쟁의 현실과 겹쳐 씁쓸하고 아프다.

세계 경제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한반도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외교·안보 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그 바탕은 경제력이고 기업이다. 아군도 동맹도 찾기 힘든 경제전쟁에서 묵묵히 고군분투하는 기업인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요즘따라 너무 가려져 있는 듯하다. /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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