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부·친노동계 인사로 알려진 송영중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이 취임한 지 세 달 만에 민간 경제단체인 경총이 쑥대밭이 됐다. 취임 이후 노사 현안에서 양대 노총(민노총·한노총)에 편향된 주장을 펼치다 직무정지된 송 부회장은 내부 직원들을 회계부정을 저지른 적폐로 규정해 해임 위기에 직면했다. 회원사인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에 거꾸로 노동계 편향적인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앉아 벌어진 참극이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3일 오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회원사들과 함께 송 부회장에 대한 해임 안건을 처리할 계획이다. 임시총회는 400여개의 회원사 과반이 참석해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안건이 처리된다. 해임 안건은 가결될 분위기다. 한 회원사의 고위관계자는 “송 부회장이 취임 이후 최저임금 논의를 두고 ‘노조친위부대’라는 비판까지 들어가며 국회와 불협화음을 내지 않았나”라며 “회장에 대한 항명, 내부 폭로 등 흔들리는 경총 사태를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 고위관료 출신인 송 부회장은 지난 4월 취임부터 내홍을 겪었다. 회원사에 따르면 송 부회장이 한 임원에게 사표를 쓰게 하고 손경식 회장을 찾아가 “부회장의 체면을 생각해 사표를 수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한 회원사 관계자는 “손 회장이 임원의 사의는 본인이 회장에게 직접 표명하고 회장이 수락하는 것이 예의라고 하며 반려했다”며 “이 사태 이후 손 회장이 송 부회장에 대한 신뢰를 접은 것 같다”고 전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불거진 시점은 올해 5월 하순이다. 국회에서 논의 중이던 최저임금에 숙식비와 상여금 일부를 산입하는 문제를 양대 노총이 함께하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자고 송 부회장이 주장한 것이다. 국회는 즉각 반발했고 결국 경총은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국회가 최저임금에 숙식비 등을 산입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노동계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하지 않았다며 시위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이 일로 국회에 질책을 받은 송 부회장은 5월 말부터 10여일간 재택근무를 했다가 6월11일 출근했다. 이날 손 회장은 송 부회장에 대한 직무정지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송 부회장은 “직무정지 결정이 법적 효력이 없다”며 항명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손 회장은 10여개의 회원사가 참여하는 이사회를 열고 자진 사퇴를 권고했지만 이마저도 송 부회장이 거부했다. 결국 경총은 이달 3일 임시총회를 열어 공식적으로 송 부회장을 해임하는 안건을 처리하기로 했다.
문제는 해임 이틀 전 경총이 사업수익 일부를 인건비로 유용하는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내부 폭로가 터진 것이다. 경총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연구와 용역사업을 통해 발생한 수익 약 35억원과 다른 사업비에서 남은 자금 등을 합쳐 매년 약 8억원을 90여명의 임직원들에게 연간 월 급여의 300%가량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경총은 폭로의 진원지를 송 부회장으로 보고 있다. 손 회장이 내부적으로 개선하라고 한 문제를 임시총회를 앞두고 폭로한 것. 손 회장은 이날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송 부회장과 관련된 보도는 보기도 싫다”고 잘라 말했다. 송 부회장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섭섭함마저 잃었다는 게 손 회장의 입장이다.
경제단체에 친정부·노동계 편향적인 인사가 낙하산으로 온 것이 화근이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경총과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무역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 가운데 순수 민간단체는 전경련과 경총뿐이다. 전경련은 지난 정부 때 국정농단 사태에 휩싸여 재계와 정부의 소통창구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여기에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등 노사 문제에서 유일하게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경총에 노동부 고위관료 출신이 온 것이다.
사태는 임시총회에서 어느 쪽으로든 결론 날 것으로 전망된다. 송 부회장의 해임이 부결되면 손 회장의 리더십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경총 직원들의 저항도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손 회장도 이를 의식한 듯 “총회 이후 새로운 경총을 만들겠다”면서 “(인적 쇄신을 포함해) 여러 부분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경우·조민규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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