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2공항 입지 선정 타당성을 재조사한다는 국토교통부 발표가 난 지 나흘 만인 지난 6일 찾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도로를 따라 50m 간격으로 꽂혀 있는 깃발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빨간색 깃발에는 ‘온평공항(제2공항) 결사반대’라고 적혀 있었다. 마침 한 주민이 바람에 기울어진 깃발의 끈을 고쳐 묶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성산읍 마을 5곳 가운데 온평리 전체 마을 74% 가량이 예정부지로 수용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2공항을 온평공항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2015년 제주 동부지역인 성산읍 일대 500만㎡ 부지에 4조원을 투입해 제주2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 건설을 시작해 2025년에 완공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역 환경단체와 주민들에게서 반대 의견이 제기됐고 지난해 정권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다소 변했다. 결국 국토부는 타당성 재조사와 기본계획 용역 결정으로 한발 물러섰다.
제2공항 예정지 마을 일대는 지난 2015년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때문에 정부의 발표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고 이곳 주민들은 분위기를 전했다. 성산읍사무소에서 만난 강원보 반대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500년 역사를 지닌 지역공동체 마을이 공항 때문에 하루아침에 붕괴 될 위기에 처해있다”며 이번 재조사 기간에 타당성을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강 위원장은 반대대책위에서 추천한 검토위원을 10명씩 동수로 꾸려 검증결과를 도출하고 이를 국토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성산읍사무소 직원의 안내로 제주올레 제2코스 대수산봉 정상에 올랐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남서쪽으로 공항 예정부지 마을은 평온한 모습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부지 동쪽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부지 남쪽으로는 제주 바다를 훤하게 볼 수 있었다. 한순간 제2공항을 짓기 위해 오름을 10개 이상 파내야 하고 동굴도 훼손해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떠올렸다.
하지만 성산읍 제2공항 예정지 마을 주민들을 제외한 제주도민의 여론은 찬성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제주공항에서 만난 한 관광버스 기사는 “현 제주공항은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급부상하면서 한마디로 포화상태”라며 “제주시와 공항 근처 주요 도로가 관광객이 이용하는 렌터카 때문에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차량 정체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제2공항이 추진되는 이유는 점점 악화하고 있는 항공교통 사정 때문이다. 제주공항은 이미 공항으로서 수용 능력 한계에 처했다는 얘기다. 공항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운항편수만 16만7,280편으로 최대수송 한계치(17만2,000회)에 거의 다다랐다. 지난해 수송인원은 2,960만명을 기록해 2012년 1,844만명과 비교하면 5년 만에 무려 60%가 급증했다. 6·13 지방선거 이전에 제2공항 건설 문제를 놓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현 제주공항을 확충해야 한다는 방안도 나왔지만 10조원 안팎의 막대한 예산에다 바다를 메워 활주로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 제주공항에 집중된 노선을 분산시켜 달라는 요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서귀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는 김모(45)씨는 “제주도는 관광산업으로 먹고 사는 곳인데 균형발전 측면에서 서쪽으로는 많이 발전했지만 동쪽은 더딘 면이 있었다”며 “제2공항 건설로 균형발전도 이루고 포화상태인 현 제주공항을 분산시키는 1석2조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산읍 특별지원사무소 관계자는 “강제수용으로 인한 토지보상 문제 등 현지 주민들의 현실적인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개선 마련에 고민 중에 있다”며 “국토부의 재검증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없다면 기본 계획의 절차대로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김선덕기자 sd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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