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블록체인협회가 최근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잇따라 해킹 사고가 빈발한 뒤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거래소의 영업 적격성을 따지는 심사 결과를 내놓아 투자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11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1차 자율규제심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전하진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12개 회원사를 상대로 1차 자율규제 심사를 한 결과 12곳 모두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협회에는 국내에서 영업 중인 암호화폐 거래소 다수가 가입해 있다. 이번에 통과한 거래소 12곳은 업비트·코인원·코빗·고팍스·코인플러그·오케이코인코리아·후오비코리아·한빗코·한국디지털거래소·네오프레임·코인제스트다. 협회는 △이용자 보호 △암호화폐의 보관 및 관리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안정성 및 정보보안 등으로 암호화폐 거래 영업의 적격성을 따졌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빗썸·코인레일 등 국내 거래소들이 잇따라 해킹을 당해 수백억원 규모의 암호화폐를 탈취당한 뒤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대응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한 투자자는 “거래소들이 이미 여러 차례 해킹으로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친 뒤에야 심사 결과가 발표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빗썸 등 실제 해킹이 발생한 거래소가 통과해 심사가 허술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잇따른다. 다른 투자자는 “심사를 받은 모든 거래소가 통과했다는 결과를 보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개별 거래소의 심사결과 등급이 발표되지 않은 점도 ‘깜깜이’ 심사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측은 첫 심사인 만큼 거래소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갖췄는지를 중심으로 따졌다며 심사의 한계를 인정했다. 심사를 총괄한 김용대 KAIST 사이버보안연구센터장은 “이번 심사에서는 보안 수준 등이 어느 정도인지 정성적인 평가를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면서 “이번 1차 심사는 일종의 체크리스트를 확인한 수준의 심사였지만 향후에는 더 자세하게 보안 시스템을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정부 차원의 규제가 아닌 업계의 자율규제라는 점에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협회는 이번 심사를 통과한 거래소들이 시중은행으로부터 암호화폐 거래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실명계좌를 발급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은 이번 심사로 달라질 게 없다는 반응이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