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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어떤 비극에 대하여

송영규 논설위원

자살한 기내식 협력사 사장은

만연한 구조적 폭력의 희생양

수십년 지나도 안 변하는 현실

이제는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으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러시아의 천재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에게 지난 1936년 1월26일은 끔찍한 날이었다. 절대 권력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자신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공연 도중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혼란”이라는 말을 던지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이날 이후 그의 삶은 지옥의 연속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소비에트 오페라의 창조성이 찬란하게 꽃피는 출발점”이라고 극찬했던 당의 태도부터 돌변했다.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충격’ ‘야만성’이라는 단어로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가 매일 그에게 달려들었다.

스탈린은 자신의 말 한마디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터다. 그저 듣기 싫었고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았다는 생각에 무심코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스탈린은 그 자체로 국가였다. 그가 아무리 개인의 취향으로 치부하더라도 그가 가진 권력이 쇼스타코비치를 가만 놓아둘 리 없다. 그에게 가해진 조직적인 폭력에 하마터면 세계는 아름다운 왈츠의 선율과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포위된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를 잃을 뻔했다.

러시아의 쇼스타코비치는 그래도 세계적인 명성 덕에 비극을 피했다. 하지만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럴 기회가 별로 없다. 얼마 전 항공사 기내식 포장·배달을 담당하는 협력업체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쉬지 않고 일했지만 비행기 기내식을 제때 전달하지 못하자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한다. 잘못은 그의 몫이 아니다. 오히려 기내식 공급 능력이 없는데도 계약을 맺은 항공사와 기내식 공급업체가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기내식 중단 사태가 커지자 “내가 책임져야 할 것 같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떠났다. 한국 경제의 고질적이고 조직적인 하청 관계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개인의 삶을 짓밟았다.

하청 업체 사장의 비극 역시 대기업이 바랐던 것은 분명 아닐 게다. 단지 평소처럼 기내식을 빨리 가져오라고 독촉하고 왜 오지 않느냐고 호통치고 지연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닦달했을 것이다. 누구도 이를 ‘갑질’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 무의식의 폭력은 이렇듯 아무도 모른 채 일어난다.

하청 업체 사장의 극단적 사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폭력의 희생양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총수가 오면 기쁨조가 돼야 하는 사원들, 오너 일가의 밀수와 탈세를 도와야 했던 승무원들, 수십년간 뼈 빠지게 일해도 오르지 못한 이사 자리를 하루아침에 금수저에게 넘긴 직원들, 유력 정치인의 힘 앞에 힘없이 당해야만 하는 여비서,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들은 다 쉬는 주말에 당직을 서는 사립학교 비정규직들…. 능력보다는 출신을 당연시하고 투명성보다는 편법을 강요한 사회 구조가 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거대한 구조적인 폭력 속에 개인들은 무방비일 수밖에 없다.



현재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3년 전에도 그랬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수없이 비판했고 끊임없이 반성했다. 그뿐이었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졌고 틈을 비집고 갑질은 되살아났다. 이 끝은 어디일까. 2010년 오스트리아에서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의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 연구 50주년을 기념해 연주회가 열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주자가 하나둘 빠져나가더니 결국 텅 빈 무대만 남았다. 생태계가 어느 순간 붕괴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우리 사회도 어쩌면 같은 길을 걸을지 모른다.

곳곳에 숨어 있는 구조적 폭력을 방치한다면 사회는 생기를 잃고 시름시름 앓고 비극은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 땅에서 기득권을 없애고 비정상과 불합리를 서둘러 걷어내야 한다. “땅을 회복하고 노역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모든 형태의 피라미드부터 허물어야 한다”는 고(故) 신영복 교수의 지적은 그래서 옳다./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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