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사가 강의 시간에 특정 대통령선거 후보를 비판하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자료로 돌린 행위는 불법선거운동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를 불법선거운동으로 인정하게 되면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에 관한 연구 행위를 사실상 금지하는 결과가 돼 학문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지난 12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대학 강사 유모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지방대 사회학과 시간강사였던 유씨는 18대 대선 선거운동기간 전인 지난 2012년 9~10월 ‘현대 대중문화의 이해’라는 강의에서 당시 새누리당 예비후보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신문기사를 강의자료로 나눠준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신문 자료에는 ‘유신 공주답게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이다’, ‘아버지 후광, 알맹이 없는 연예인식 인기’, ‘일본 장교 출신으로 헌정 파괴를 자행했던 아버지가 억압적으로 강탈한 것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하는 이 땅의 어느 딸에게’ 등의 표현이 기재됐다.
유씨는 당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민주·진보정당으로 정권교체를 꾀하는 단체의 운영위원이었다. 그는 이들 단체 소속으로 ‘대선에서 민주·진보정당들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핵심적인 공동 공약으로 삼아 선거전을 치르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회원 집중 실천사업으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의결하기도 했다.
2013년과 2014년 열린 1·2심은 “유씨의 행동이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 개진이나 지지·반대 의사표시라 볼 수 없고 오히려 수강생들에게 박근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줘 낙선을 도모하려 한 능동적 행위로 인정된다”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대법원은 “학문적 과정이라고 볼 수 없음이 명백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연구와 강의를 위한 정당 행위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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