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소리(VOA) 방송은 18일 “지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금수품목인 북한산 석탄을 싣고 한국에 입항했던 파나마·시에라리온 선적 선박들을 사실상 중국 회사가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둔갑시켜 한국으로 보내는 과정에 중국 회사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시간제한도, 속도제한도 없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는 중국의 봐주기로 점점 더 느슨해지고 비핵화 협상은 속도를 못 내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VOA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러시아에서 북한산 석탄을 싣고 인천과 포항으로 입항한 ‘스카이 앤젤’호와 ‘리치 글로리’호는 각각 파나마와 시에라리온 선적이다. 하지만 이들 운영회사의 주소는 중국 다롄으로 등록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VOA는 “문제 선박들의 실제 운영은 중국 회사가 하고 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를 준수하고 있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북중 국경지역의 직접 거래 및 안보리 결의 위반 사례를 감안할 때 중국이 대북 제재를 느슨하게 하는 주체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가뜩이나 올 들어 세 차례나 북중 정상회담을 열어 ‘신(新)밀월’에 나서며 대북 제재에 계속 구멍이 뚫리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비핵화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하원 의원들을 만나 미러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던 중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좋다”면서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서 폭스뉴스 등 언론 인터뷰에서 내비쳤던 ‘비핵화 협상 속도 조절론’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직후까지도 이른 시일 내에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일괄타결론을 앞세워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속도보다 절차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결국 답답한 것은 우리 측이다. 비핵화 협상이 지연되는 가운데 대북 제재에 구멍이 더 많이 뚫리면 북한의 변심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핵화 협상이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종전 선언과 남북 인적교류·경협 등에 대한 구상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1일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방북을 신청했지만 승인이 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 협상에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경협을 서두를 경우 대북 제재 문제와 연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기업인들의 방북에 대해 “관계기관 협의 등을 통해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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