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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한 달…'워라밸' 자리 잡는다지만 잡음도 '여전'

주요 그룹, 예행연습 덕에 무난한 적응…유연근무제 속속 도입

“삶의 쉼표 찍으려다 경쟁력에 마침표 찍을 수도”…잡음도 여전

주 52시간 계도기간 6개월./연합뉴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한 달을 맞은 주요 대기업들은 대체로 큰 문제 없이 변화에 적응하는 모습이다.

이미 제도 시행에 앞서 상당기간 ‘예행연습’을 한데다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에도 노사가 즉각 이견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도입된 ‘주 5일 근무제’가 이제는 완전히 정착된 것처럼 ‘주 52시간 근무’도 곧 당연한 일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대기업들이 많다.

그러나 일부 업종, 일부 직종에서는 개별 업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300인 이상의 사업장에 일괄적으로 도입함으로써 가뜩이나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과 탄식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 정유업계 등에서는 기업 활동 자체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제도 보완을 촉구하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주요 그룹 계열사들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사실상 조기 정착하는 양상이다.

이들 그룹에서는 직원들이 “주 52시간 근무가 아니라 주 40시간 근무 아니냐”고 말할 정도로 이미 불필요한 야근과 주말근무는 대부분 사라졌고, 시행 초기 일부 혼란도 상당 부분 정리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지난 1일부터 선택적 근로 시간제와 재량근로제가 동시에 적용되면서 정해진 출근 시간이 사라졌다. 일찌감치 자율 출퇴근제가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근무시간을 기존의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직원들은 근무시간 관리에 부담이 확 줄었다.

현대차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장 생산직의 경우 이미 2013년부터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했고, 본사 사무직도 지난 5월부터 유연근무제를 시범 운영해, 큰 혼란이 없었다.

올해 1월 대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주 35시간 근무체계를 도입한 신세계 그룹은 ‘하루 7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는 정시 퇴근을 독려하기 위해 오후 5시 20∼30분에 업무용 컴퓨터를 자동으로 꺼지게 하는 ‘PC 셧다운제’도 도입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달부터 주 40시간의 자율 근무제(정해 놓은 시간제한 없이 개인이 자유롭게 시간 운용)를 본격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5가지 출·퇴근 시간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와 월 1∼2회의 동시 휴무일을 연초에 공지해 모든 직원이 휴가를 계획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전사 동시 휴무제’를 시작했다.

일부 기업들은 현실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이 어려운 경우 노사가 함께 해결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고 있고, 고용 확대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사례도 선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 노사는 최근 유연근로제 도입에 합의하면서 단시간에 업무가 집중되는 부서의 근무 초과 문제를 해소할 실마리를 마련했다.

식품업계는 주 52시간 시행을 맞아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동시에 신규 인력 채용에 나섰다. 서울우유는 최근 생산 라인에 근무할 직원 50명을 충원했고, 하이트 진로 역시 지난해 연말과 올해 상반기 생산직과 영업·관리직 등 신규 직원 100여 명을 새로 채용했다. 일부 기업 홍보실의 경우 주말 저녁 신문·방송 모니터링 당번 직원의 휴일 근무시간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약 2∼3년 주기로 대규모 정기 보수를 시행하는 정유·화학업계의 경우 이를 예외로 인정해달라고 강력 촉구하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현행 3개월에서 6개월∼1년까지 확대하거나, 정기 보수를 ‘특별 연장근로 인가’(자연재해 및 재난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노사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를 조건으로 주 52시간 초과 근무 허용) 대상에 포함해 달라는 것이 골자다.

연구·개발(R&D) 인력 투입이 필수적인 IT·전자전기 업계 등에서도 당장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R&D 파트는 업무 특성상 며칠 밤을 새우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제도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지만 ‘삶의 쉼표’를 찍으려다 ‘경쟁력의 마침표’를 찍을까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건설현장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공사 기간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공공사의 경우 발주처인 공공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공기를 연장하거나 공사비를 증액하는 방안으로 협의할 수 있지만 민간 공사는 공사 기간 연장 논의 자체가 여의치 않고, 약속한 공기를 맞추지 못하면 지체 보상금을 부담해야 하므로 공사비 증가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장의 애로사항이다.

실제로 이미 일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입주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고, 해외 공사 현장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도 문제지만 해외 발주처가 우리나라의 주 52시간 근무로 인해 공기를 연장해줄 일은 만무하다”며 “근무시간은 줄었는데 공사 기간은 맞춰야 하고 애로가 크다”고 호소했다.

식품업계 등에서는 사실상 일을 하지만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 등을 염두에 두고 더 정교한 근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업체 특성상 영업 목적으로 밤에도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지만, 이런 자리까지 다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달라고 사측에 요구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서영인턴기자 shy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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