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이 나오면 보통 출판사들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는 대형 서점 위주로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탁환 작가와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지방에 있는 작은 서점들로 시선을 돌렸다. 강연료는 받지 않지만 대신 ‘숙식제공’이라는 조건을 걸었다.
2년 전 이렇게 시작된 ‘김탁환의 전국제패’는 올해 김 작가의 신작 ‘이토록 고고한 연예’ 출간을 맞아 시즌 2로 진행됐다. 두 사람은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17일까지 제주도와 속초, 전주, 괴산, 부산 등 전국 각지의 동네 서점 10곳을 돌았다. 신청 방법은 지역 서점들이 김홍민 대표의 페이스북을 통해 선착순으로 신청하는 방식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순식간에 신청이 마감됐다.
김 작가와 김 대표는 최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탁환의 전국제패 시즌2’에 얽힌 흥미진진한 얘기를 전했다.
김 대표는 강연료를 무료로 진행한 사연부터 들려줬다. 그는 “서울에서만 행사를 할 것이 아니라 지방도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2년 전 충동적으로 페이스북에 모집 글을 올렸는데 금방 마감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고 했다. “영화에서 보면 외국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명한 작가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서점에서 십여 명 정도의 독자를 앞에 놓고 작은 낭독회를 하더라고요. 이런 세련되고 멋있는 작은 낭독회 대신에 왜 우리는 대형 서점에 몇백 명씩 모아놓고만 하려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역의 작은 서점들이 작가를 초청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금전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강연료 무료 조건으로 ‘전국제패’를 진행하게 됐다.
‘전국제패 시즌2’는 김 작가의 신간 ‘이토록 고고한 연예’가 출간되기 전에 찾아간 행사로 책을 읽은 사람들이 아닌 ‘예비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바람에 애로도 있었다. 김 작가는 “책을 읽고 온 독자들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책을 안 읽은 독자들을 상대로 스포일러까지는 아니면서 책이 재밌다고 설명해야 하는 그 경계가 어려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책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기 때문인지 선물할 책을 사가는 이들도 많았다. 김 대표는 “초판 3,000부가 거의 전국제패 중에 팔렸다”며 “작은 서점에서 100권씩 팔린 것에 굉장히 놀랐다”고 말했다.
이번 책이 더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달문’이라는 선한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쓴 소설 ‘광문자전’에서 종로 저잣거리의 거지로 등장하는 ‘광문’이 바로 ‘달문’이다. 달문은 한 시대를 풍미한 춤꾼이자 재담꾼이었지만 자신의 재주로 부와 명예를 탐하기보다는 오로지 어려운 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다. 김 작가는 “‘달문’이라는 캐릭터를 알게 된 것은 10년 정도 됐는데 본격적으로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라며 “거리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거리에서 선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았던 달문에 대해 자세히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달문방’도 생기는 등 이례적인 반응에 대해 김 작가는 “착한 캐릭터들이 ‘민폐 캐릭터’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달문은 착하고 재밌는데 일도 잘 지혜롭게 성사시켜 나가는, 만나기 어려운 캐릭터라서 더 큰 사랑을 받은 거 같다”고 전했다.
‘전국제패 시즌 2’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서점으로 김 대표는 부산 낭독서점시집을 꼽았다. 행사에 필요한 사항들을 논의하려 할 때마다 대표와 연락이 닿지 않았고 떠나기 나흘 전까지 책을 보낼 수조차 없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혹시 서점이 망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하지만 막상 가보니 보수동 책방 골목 맨 끄트머리, 다 쓰러져가는 옛날 가게에 사람들이 꽉 차서 더 큰 감동이었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매일 장거리를 운전하며 이동해야 해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지만 시즌3, 시즌4에 대한 가능성을 내비쳤다. “부산의 동네 서점에 갔을 때 한 어르신이 ‘출판사 사장은 더 열심히 지방을 다니도록 해라’ 하시더라고요. 서울에 있어서 사정을 잘 몰랐는데 부산에 내려가는 작가가 거의 없다는 게 놀라웠어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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