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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성 벗지 못하는 대학 연구비 관리...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일일이 '이것 영수증 됩니까' 물어서야"

노 이사장, 연 5조 대학 연구비 관리 행태 지적

대학 산학협력단에 네거티브 규제 제시, 자정역량 높여야

국내 연구자 대거 해외 허위 학술단체 와셋 참가 "창피해"

"연 20조 국가 R&D 중 알맹이 없는 '겉포장' 사업 최소화"





노정혜(61·사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지난 2005년 말 이른바 ‘황우석 사태’ 당시 서울대 연구처장으로 논문 조작을 소신껏 규명했다. 이듬해 초 황 교수의 극성 지지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32년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근무한 그는 2011년 국내 최고의 영예인 ‘한국과학상’을 수상하는 등 연구개발(R&D) 현장의 애로와 문제점도 잘 알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등을 지내며 R&D 정책에도 의견을 내왔다. 올해 5조59억원, 내년부터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의 정부 R&D 자금까지 총 6조5,000억원가량을 집행·관리하게 되는 현장 사령탑이 된 요인이다.

지난달 9일 취임 후 새로운 좌표 설정에 노심초사하느라 다소 핼쑥해진 노 이사장은 1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과학기자협회 간담회에서 “정부와 연구자 간 소통 플랫폼이 되겠다. 연구자가 ‘전문가로부터 공정하게 평가받고 있구나’ 하는 신뢰감을 주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한국연구재단은 20명의 상근직 등 총 701명의 프로그램매니저(PM)를 두고 대학을 비롯한 정부출연 연구기관, 기업을 대상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연구 기획·평가·지원·관리 업무를 위탁받았다.

노 이사장은 “겉포장과 달리 알맹이 없는 정부 R&D 사업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기초·응용 연구 모두 충실성과 국제경쟁력을 따지되 중대형 과제는 1박2일 심사 등 심층평가를 강화하고 국책과제는 기획·평가·수행을 분리해 크로스체크함으로써 공정성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질적 평가의 보조수단으로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평가자를 공정하게 선정하겠다는 포부도 피력했다. 동일 기관과 동일 연구원이 평가하고 수행하는 것을 막기 위한 ‘상피제’가 전문성 저하를 불러와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4차 산업혁명과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된 과학기술 R&D 혁신을 위해 연구현장의 선순환을 이끌겠다는 얘기다.



연 5조원에 근접(2016년 4조3,000억원 집행)하는 정부 R&D 자금을 쓰는 대학의 연구비 관리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짙게 토로했다. 그는 “연구자가 일일이 연구재단에 ‘이것 영수증 됩니까’라고 물어야 하느냐”며 “대학 산학협력단에 네거티브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들이 자발적으로 판단해 자정 역량을 높이도록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교수들과 정부출연기관 연구원들이 해외 허위 학술단체인 ‘와셋’에 대거 참여한 것에 대해서는 “창피하다”며 개탄했다. 그는 “학계에서 경고나 경계가 없어 지난 10여년간 이런 학회가 성행했다”며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학회는 주의하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구비를 매년 정산해야 해 (소진 차원에서) 학술대회를 가볍게 보는 인식이 생기지 않았을까 한다”며 정산 기간을 길게 가져갈 필요성도 내비쳤다. 그러면서 연구자정보시스템(KRI)을 통해 연구자의 부실 학술활동을 파악해 반복성·고의성이 있는 경우 소명을 요구하고 내역을 들여다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와셋에 참가한 연구자는 대체로 한 번 간 것으로 조사됐지만 무려 22회나 참석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그는 교수 시절 연구비 부당 집행 의혹을 받는 서은경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과 관련해 학생인건비 공동관리와 임의집행을 사전에 알았는지를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어 형사 고발했다고 설명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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