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것보다 뼈아픈 일은 없다. 더구나 목숨처럼 아끼는 이의 배신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1582년 6월2일 일본 전국시대 최고의 무장으로 불리던 오다 노부나가는 소수의 호위병을 거느리고 교토 혼노지에 머물고 있었다. 전날 밤에도 바둑을 즐길 만큼 변고의 조짐은 없었다. 게다가 근처에서는 자신의 부장인 아케치 미쓰히데가 1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있던 터. 그러나 그날 새벽 아케치가 혼노지를 급습했다. 방심한 오다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천하 통일을 목전에 뒀던 일본 영웅의 허망한 결말이었다.
배반은 종종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기도 한다. 아케치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은 후일 조선에 전쟁의 피바람을 몰고 오는 서막이 됐고 자신을 아들처럼 대해줬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겨냥한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비수는 로마를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꿔놓았다. 이는 현대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원할 것 같았던 유신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끼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구였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법정 진술로 궁지에 몰렸다. 코언이 뉴욕 연방법원에 출석해 대선 기간 성 추문 확산을 막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한 포르노 배우 등에게 돈을 지급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10년 넘게 곁에 뒀던 충복의 배신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형 악재를 안겨줬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쌓은 신뢰의 탑은 모래성보다 못하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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