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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무 Science&Market] 창의성 떨어뜨리는 연구 인프라

이경무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인재들 재능 끌어올릴 인프라 부족

미래사업 수십조 투자 나선 대기업

대학 인프라 확충 등 적극 지원을





지난해 영국의 손꼽히는 대학에서 머신러닝으로 박사 학위를 받을 예정이던 학생이 ‘포스닥(박사후과정)을 할 수 있겠느냐’고 연락이 와 모처럼 고무됐다. 국제적으로 나름 이름이 알려진 연구실이지만 우수한 포스닥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 대학 연구실에는 최소 한두 명에서 많게는 10~20명의 포스닥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하지만 포스닥을 문의했던 학생은 우리 학교와 연구실을 방문한 뒤 ‘다른 곳으로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연락해왔다. 연구환경과 시설이 생각했던 것보다 열악해 실망했다는 것이다.

국내 대학의 연구 인프라는 선진국 대학에 비해 전반적으로 뒤떨어져 있다. 필자가 몸담은 학교도 건물이 대부분 20~30년 됐고 석면의 위험성에도 노출돼 있으며 냉난방이 원활하지 않은 형편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연구에 필수적인 서버도 외국 대학이나 기업의 5분의1 또는 10분의1 규모밖에 안 되고 그나마 공간 부족과 전력설비 미비로 설치조차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환경에도 짧게는 4~5년, 많게는 학부과정을 포함해 10년간 열정을 불태우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최근 구글·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 등 유수의 선진기업들에 인턴으로 다녀오는 학생들이 많이 생기면서 연구환경의 차이를 더 느끼게 된다. 최고의 연구장비에 개방성, 편의성, 소통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그들의 연구공간은 최고 연구자에 걸맞은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다.

얼마 전 네덜란드 명문대학인 델프트공대를 방문했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최신 건물과 시설뿐 아니라 모든 건물에 다양한 테이블과 휴식공간이 곳곳에 배치돼 삼삼오오 열띤 토론을 하거나 사색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실 사색과 토론은 창의적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데 공간 설계에 반영한 그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지난해 중국의 주요 대학을 방문했을 때도 정부와 기업들의 대학에 대한 연구 인프라 투자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이뤄지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013년 개교한 신흥명문 상하이텍의 경우 상하이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캠퍼스와 건물 설계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설계한 유명 건축가에게 맡겼고 MIT보다 더 좋은 캠퍼스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AI와 같은 기술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뛰어난 인재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수한 인재들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재능을 끌어낼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면 소용없다. ‘귤화위지(橘化爲枳·남쪽의 귤을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됨)’와 같이 내재 역량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적절한 조건과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도와 중국의 많은 인재가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빛을 발하지만 정작 자국 내에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도 다분히 이러한 이유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비 규모는 세계 5위 수준이다. 이 중 대부분의 예산이 직접연구비로 사용되는 것으로 안다. 대학에서 간접비를 가지고 노후화된 인프라를 개선·확충하기에는 그 규모와 제한적 규정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와 관련한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 예산도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마침 최근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이 AI를 포함한 미래사업에 수십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며 대학교와의 협력 강화를 발표했다. 이러한 투자금의 5%만이라도 인재를 양성하는 플랫폼인 대학의 물리적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확충하는 데 사용하기를 기대해본다. 얼마 전 중국의 한 IT 대기업 연구소에서 우리 학생들을 리쿠르팅하기 위해 방문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중국 회사로의 인재유출은 물론 중국 대학교에 학생들을 뺏기는 날이 곧 오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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