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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브랜드 이야기 (20)] 튜더, 롤렉스 ‘서브’에서 ‘독립’ 브랜드로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8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롤렉스 창립자 한스 빌스도르프 Hans Wilsdorf 가 1946년 론칭한 시계 브랜드 튜더 Tudor가 7월 한국시장에 론칭했다. 튜더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롤렉스 서브 브랜드로 취급받았지만, 최근엔 자사 무브먼트 개발에 집중하면서 독립된 명품 시계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튜더 유일의 여성 컬렉션 Clair De Rose. 튜더는 이름에 걸맞게 대체로 강렬한 이미지 시계가 많다. 여성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사진=튜더




1882년 독일 바이에른 쿨름바흐 지역에서 태어난 한스 빌스도르프는 야심찬 시계 제작자이자 뛰어난 사업가였다. 1905년 영국 런던에서 빌스도르프&데이비스 Wilsdorf & Davis 회사를 세웠고 1908년 롤렉스 브랜드를 론칭했다. ‘최고의 품질’을 모토로 승승장구하던 롤렉스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한때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1919년 스위스로 본사를 옮긴 뒤부터는 사세가 더욱 확장돼 명실공히 글로벌 명품 시계 브랜드로 이름을 굳혔다.

롤렉스를 세계 유수의 시계 브랜드로 올려놓은 한스 빌스도르프는 영민한 사업가답게 또 다른 고민을 시작했다. 롤렉스는 ‘최고의 품질’을 모토로 했던 까닭에 상품 가격대가 높아 탄력적인 운영이 어려웠다. 제작 공정이 엄격해 할인 요소를 찾기 어려운데다, 자체 설계·생산한 무브먼트만 쓰다 보니 줄일 수 있는 비용에도 한계가 있었다.

한스 빌스도르프는 본사 이전 이후 롤렉스 수준의 품질을 갖추면서도 좀 더 낮은 가격으로 선보일 수 있는 시계 브랜드 론칭을 꾸준히 고민했다. 이 생각은 시계 부품 업체 대표였던 절친한 친구 필리페 휘터 Philippe Huether의 힘을 빌려 조금씩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1925년 필리페 휘터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면서 차질을 빚는 듯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필리페 휘터의 부인이 남편의 회사를 즉시 인수하면서 문제가 해결됐다. 필리페 휘터의 부인은 1926년 2월 튜더 브랜드를 한스 빌스도르프의 이름으로 등록하면서 그에게 독점 사용권을 부여했다. 한스 빌스도르프는 1936년 튜더 브랜드를 완전히 양도받아 1946년 3월 정식으로 론칭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왜 튜더일까?

한스 빌스도르프는 롤렉스 이름을 작명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스 빌스도르프가 명명하기 전까지 롤렉스는 세상에 없던 이름이었다. 반면 튜더는 예나 지금이나 유럽권에서 매우 유명한 이름이다. 튜더는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영국을 지배했던 왕가의 이름으로 절대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심볼이다. 유럽의 약소국이었던 영국은 튜더 왕가의 통치 덕분에 훗날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스 빌스도르프는 왜 새로운 브랜드의 이름을 튜더라고 지었을까?

튜더는 한스 빌스도르프의 영국 사랑을 표현하는 이름이었다. 한스 빌스도르프는 영국을 매우 사랑했다. 독일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시계 기술을 배웠지만, 한스 빌스도르프는 영국에서 첫 사업을 시작할 정도로 영국 사랑이 유독 강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었고, 한스 빌스도르프는 이런 영국을 동경했다. ‘최고 품질’을 모토로 하는 롤렉스의 품질 1등 주의도 이런 영국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튜더를 브랜드 이름으로 낙점하면서 초기 로고도 튜더 왕가의 상징인 장미가 선택됐다. 튜더 왕가는 붉은 장미 문양을 상징으로 하는 랭커스트 가문과 흰 장미 문양을 상징으로 하는 요크 가문 사이에 일어난 장미전쟁을 종식하면서 패권을 잡았기 때문에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겹친 문양을 상징으로 사용했다.



◆ 로고의 변화

튜더 브랜드 로고는 1969년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해왔다. 튜더는 192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첫 상호 등록을 했지만 첫 시계 시판은 1932년 호주에서 했는데, 이때 판매된 시계는 TUDOR라는 브랜드 철자를 변형해 로고 대신 사용했다. T자를 조금 더 키우고 상단 가로획을 길게 늘여 나머지 철자 UDOR에 지붕을 씌우는 식이었다.

1930년대는 위와 같이 브랜드 철자를 변형하거나 방패 안에 장미 한 송이가 그려진 로고가 주류를 이뤘다. 재밌는 건 이 시기부터 1960년대까지 롤렉스의 왕관 로고나 Rolex 철자가 같이 등장하는 시계도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한스 빌스도르프의 뜻이었다. 독립된 명성을 확보하기 전까지 튜더에 모 브랜드인 롤렉스 이름을 보증으로 삼아 그 품질을 인증해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튜더는 무브먼트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품이 롤렉스와 동일한 매뉴팩처에서 생산돼 실제로 품질 면에서도 대단히 우수했다. 롤렉스는 기술과 디자인, 기능 등은 물론 유통과 AS까지 도맡으며 튜더에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1946년 별도 법인 몽트르 튜더 SA Montres TUDOR SA가 설립되면서 튜더는 좀 더 독립된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튜더 로고는 두 개 잎이 달린 장미 한 송이로 점차 통일돼 갔다. 장미를 둘러싼 방패도 서서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후로도 한스 빌스도르프는 끊임없이 튜더와 롤렉스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튜더 시계 곳곳에 롤렉스 왕관 로고와 Rolex 철자 넣기를 고수했다. 그가 튜더를 기획했을 때 생각했던 ‘롤렉스 수준의 품질을 갖추면서도 좀 더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일 수 있는 브랜드’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튜더는 1969년 브랜드 로고를 현재의 방패 모양으로 통일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장미 대신 방패가 선택된 건 튜더의 견고함과 높은 신뢰도를 표현하는데 방패가 더 적합한 이미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장미는 튜더 왕조를 상징하는 문양 그대로, 즉 두 개 장미가 겹친 정면 문양으로 크라운 등에 자리를 잡았다.

◆ 롤렉스를 넘어서

한스 빌스도르프의 바람처럼 현재 튜더는 롤렉스 수준의 품질을 갖추면서도 좀 더 합리적 가격대 제품으로 시계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ETA 범용 무브먼트를 제외하면 나머지 부품은 대부분이 롤렉스 생산시설에서 조달돼 세부 품질과 마감 면에서 비슷한 가격대의 명품 브랜드를 압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튜더는 2015년부터 자사 무브먼트를 내놓기 시작하면서 최근 성장세에 날개 하나를 더 달았다. 롤렉스 서브 브랜드로 여겨졌던 이유가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했기 때문이었음을 고려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자사 무브먼트를 쓰면서도 가격은 큰 변화가 없어 한스 빌스도르프가 생각했던 롤렉스 수준의 품질을 갖추면서도 좀 더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조건도 맞추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튜더는 ‘롤렉스 이상의 품질을 갖추면서도 좀 더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이라는 이미지로 소비자에 다가갈 지도 모른다. 현재의 튜더야 말로 한스 빌스도르프가 처음 생각했던 바로 그 브랜드가 아닐까? 튜더의 앞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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