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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레슬링은 쇼가 아니야" 이왕표의 진심, 그리고 '전설이 된 챔프'

사진=맥심코리아




절대 질 것 같지 않던 챔피언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쓰러졌다.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가 4일 64세를 일기로 영원히 링을 떠났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주늑들지 않는 ‘남자 중에 남자’로 수십년간 한국 프로레슬링을 지켜왔다.

프로레슬링이 사람들의 눈에서 멀어진 이후에도 줄곧 색다른 이벤트를 위해 뛰었고, 2013년 담도암 수술 뒤 기적적으로 완치판정을 받고 ‘영원한 챔피언’의 위용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발한 암세포 앞에서 마지막 순간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김일에 이어 한국 프로레슬링계의 절대자이자 상징과도 같은 거목(巨木)은 전 국민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관중석의 환호를 그리워하며 스승 곁으로 떠났다.

이왕표는 1954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1975년 김일 체육관 1기생으로 입성하며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김일의 수제자로 불리던 그는 일본에서 활동한 뒤 1980년대 한국으로 돌아와 프로레슬링의 부흥과 함께 최고의 인기 스포츠스타로 떠올랐다.

사진=맥심코리아


특히 1990년대 GWF 소속으로 챔피언에 올라 25차례나 방어전에 성공하고, 훗날 WWE 슈퍼스타로 떠오른 부커T와 ECW 세계 챔피언을 지낸 마이크 어썸에 승리를 거두는 등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명절마다 이왕표가 자신보다 덩치가 큰 선수들에게 드롭킥을 날리는 모습에 옹기종기 모인 가족들이 환호했고, 때로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재치있는 입담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야구와 축구가 전국민적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프로레슬링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홍상진, 노지심 등 몇몇 선수들이 애를 썼으나 확실한 후계자가 없어 2000년대까지 링에 올라야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K-1과 프라이드 등 종합격투기가 인기를 얻자 그는 “프로레슬링도 충분히 강하다”며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009년과 2010년 밥샙과 대결을 벌여 승리하기도 했다.

2013년 담도암으로 쓰러진 그는 수술에 앞서 “수술이 잘못되면 틴틴파이브 출신 이동우에게 안구를 이식하고 싶다”는 유언을 전해 또다시 온 국민을 감동하게 만들었고, 병마를 극복한 뒤에는 여전히 프로레슬링 중흥을 위해 전국 팔도를 뛰어다녔다.

환갑을 넘긴 2015년 마지막 경기를 추진하면서 의욕을 보이기도 했으나 건강 문제로 인해 꽃다발을 안은 채 정든 사각 링에 올라야 했다. 이날 경기에 모인 모든 관객들이 기립해 ‘영원한 챔프’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왕표는 항상 “내 프로레슬링은 쇼가 아니라 진짜”라며 “프로레슬러는 어떤 격투기 선수와 대결해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레슬링에 각본이 있고 없고를 떠나 링 위에 오르기 위한 땀과 노력, 링 안에서의 모습은 진짜라는 뜻이었다.

/김진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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