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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사망자만 551명… '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사건은?

대법원 비상상고로 31년만에 진실 밝혀질지 주목

군사 정권 비호 아래 사상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이 지난 1984년 5월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형제복지원 진상규명 대책위=연합뉴스




대검 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로 대법원에 비상상고 될 것으로 보이는 ‘한국판 홀로코스트’이자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비상상고는 확정된 형사 판결에서 위법한 사항이 발견됐을 때 대법원이 다시 심리하도록 하는 비상구제절차다. 판결이나 소송 절차에서 위법이 발견됐을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절차이다. 이런 점에서 원심이 증거 등을 부당하게 판단해 생긴 사실관계 오류를 정정하거나 적용된 법이 위헌으로 판명났을 때 진행하는 ‘재심’과도 다르다.

원칙적으로 유죄가 확정된 판결에 대해서만 할 수 있는 재심과 다르게 비상상고는 유·무죄는 물론이고 면소·공소기각 등으로 확정된 판결도 대상이 된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경우, 박인근 원장 등의 특수감금 행위에 대해 내무부 훈령 410호를 적용해 형법상 정당행위라고 보고 무죄로 판결한 부분이 ‘법령을 위반한 심판’에 해당한다고 검찰개혁위는 판단했다. 비상상고는 검찰총장이 검찰을 대표해 대법원에 제기하고, 단심제로 대법원 선고에 의해 확정된다. 문무일 총장이 대상 사건과 그 이유를 기재한 신청서를 대법원에 제출하면, 대법원에서는 일반적인 상고심 사건과 마찬가지로 사건번호를 부여하고 접수 후 소부에 배당해 공판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 시절을 거쳐 전두환 정권까지 무려 13년 동안이나 경찰, 부산시의 비호 속에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지만 3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1960년대 초 부산 용호동에서 아동보호시설로 시작했다. 1975년 부산시와 부랑인 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인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형제복지원은 군사정권이 거리의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매년 3,000명 이상의 무연고 장애인, 고아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까지 불법 납치·감금했다. 경찰도 무고한 시민을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데려갔다.

형제복지원에 들어가면 군대식으로 집단 수용해 하루 10시간 이상 강제노역을 강제했다.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기를 서슴지 않았으며, 심지어 여성 수용자에 대한 성폭행까지도 스스럼없이 벌어졌다. 또한 수용자를 살해해 암매장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1975년부터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1987년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이른다. 심지어 사망자의 시신 일부가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용 시체로 팔려나가기까지 했다.

형제복지원이 ‘부랑인’을 감금한 근거는 부랑인 신고·단속·수용·보호 등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인 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였다. 훈령이 정의한 부랑인은 ‘일정한 정주 없이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는 걸인, 껌팔이, 앵벌이 등 사회질서를 해치는 ‘모든 사람’이었다. 이 ‘모든 사람’이란 애매한 개념은 얼마든지 멋대로 해석될 수 있었고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형제복지원으로 끌려와 고초를 겪고 목숨을 잃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어떠한 법적 근거 없이 행정규칙에 불과한 내무부 훈령을 근거삼아 자행된 불법 강제 감금 사건이었다.

10여 년 동안 강제 구금과 노역, 인권유린이 자행되던 형제복지원은 1986년 말 울산지청의 한 검사가 산행 도중 울산에서 강제노역하는 수용자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하지만 재판에 회부된 박인근 원장은 특수감금 혐의가 무죄를 받아 건축법 위반, 업무상 횡령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의 ‘솜방망이’ 선고를 받고 형을 산 뒤 석방했다.



게다가 박 원장은 전 정권으로부터 ‘부랑아 퇴치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과 1984년 각각 국민포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7월에서야 박 원장에 수여된 훈포장 2개를 박탈했다. 이후 박 원장은 수차례 형제복지지원재단, 느헤미야 등으로 법인명을 변경하고 각종 수익사업을 하며 20년 이상 부를 축적했다.

박 원장은 부랑인보호시설 운영 당시 매년 10억∼20억원의 국고보조금을 수령했다. 또한 부랑인 공익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헐값에 불하받은 국유림을 수용자의 강제노역을 통해 ‘형제복지원 왕국’을 건설하고 2001년 건설사에 팔아 2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남긴 바 있다. 박 원장은 법인 정관을 개정해 스포츠센터, 해수온천 등 복지시설과 동떨어진 각종 수익사업에 손을 댔다. 이 과정에서 부산시는 법인에 총 3차례에 걸쳐 60억원의 장기차입허가를 내줬고 법인이 원금과 이자 등을 상환하지 못하자 2009년 118억원의 장기대출을 다시 승인해줬다. 시민사회단체는 법인재산 외에 박 이사장 친인척 일가가 보유한 국내외 재산 규모가 1,000억원대로 보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2015년 한 법인에 매각됐으며 이후 부산시가 형제복지원 설립 55년 만에 법인 허가를 취소했다. 지난 2014년에 아들과 함께 재단 공적자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박 원장은 2016년 6월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병이 악화해 숨졌고, 박 원장의 아들은 횡령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출소했다.

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피해생존자 모임 회원들이 지난 2017년 9월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 앞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지난 세월 후유증을 안고 숨죽여 살아오다가 피해자 한종선 씨의 국회 앞 1인 시위와 시민단체·피해자의 노력 끝에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를 지원하는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19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 들어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다시 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국회 앞에서 300일 넘게 천막 농성을 하며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대법원 심리를 통해 과거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이미 확정된 무죄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과거의 판결에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박인근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확정된 무죄판결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비상상고 사건의 원심판결이 유죄 판결 등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경우에만 2심 재판을 다시 하고, 그 외에는 비상상고 판결의 효력이 미치지 않도록 규정한다. 결국 검찰의 신청이 받아들여져도 현 시점에서는 ‘원심판결이 위법했다’는 선언적 의미만 남는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비상상고로 사법부의 재판단을 받게 되면 참혹한 인권침해 실상이 드러날지와 더불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이 제정되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박 원장 일가의 재산 환수 등이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노진표 인턴기자 jproh9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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