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이 미국 기업 인수합병(M&A)의 최대 포식자로 등극하고 있다.
17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 초부터 이날까지 일본 기업의 대(對) 미국 기업 M&A 건수는 총 177건에 달했다. 이는 미국 기업에 대한 일본의 M&A 건수가 사상 최고를 찍었던 지난 1990년의 178건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금액 기준으로는 4조7,000억엔(약 47조원)에 달해 3년 연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11일 일본 반도체 업체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가 미국 반도체 설계전문 회사 IDT를 일본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7,330억엔(약 7조4,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미국 M&A 시장서 일본 기업 급부상 왜?
美, 中자본 자국기업 인수 제동
“日, 안전한 인수자” 인식 확산
미국 M&A 시장에서 일본 기업이 이처럼 활개를 치는 배경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자본의 미국 기업 인수에 대해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잇따라 제동을 걸면서 일본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FT는 일본의 한 은행권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미 당국은 일본 기업들을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sweet spot) 인수자로 여긴다”며 “이 같은 인식은 최근 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중국 자본의 M&A를 연이어 저지하면서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정부가 브로드컴에서 추진한 1,420억달러 규모의 퀄컴 인수 시도를 차단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브로드컴 본사는 싱가포르에 있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 회사가 화웨이 등 중국 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국제 M&A 전문 로펌인 셔먼앤드스털링 도쿄지사의 케네스 르브런 변호사는 “5년 전만 해도 미국 내 대부분의 입찰에서 중국 기업들이 30% 더 높은 가격을 써냈지만 지금은 중국 기업의 위협이 덜해졌다”고 말했다. FT는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로 일본 기업의 미국 M&A 시장 내 활약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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