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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의 철학경영] '無爲 리더'는 그냥 노는 사람인가

연세대 철학과 교수

<83> 리더의 현명한 처신

전적으로 구성원에 위임하거나

대승적 양보가 옳은 처사 아냐

업무 나눠 조직 내 협의 이끌되

원하는 결론 기다릴 줄 알아야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느낀 바가 하나 있었다. ‘나는 이제 뭐든지 다 잘해낼 수 있다.’ 왜. 이 지긋지긋한 살인적 더위에서 살아남은 자의 역설적 자신감이다. 그러나 이 더위에서의 생존이 저절로 온 것은 아니다. 온갖 피서 방법을 다 사용했다. 그중에서도 역시 압권은 에어컨이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전기가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인위적이다. 더위는 인위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람도 그렇게 다스릴 수 있을까. 사람은 무위(無爲)로 다스려야 한다.

손 안 대고 코 풀면 어떻게 될까. 얼굴에 코가 튀기 십상이다. 누워서 떡을 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체하기 쉽다. 엎드려 절 받아본 적이 있는가. 상대방에게 무례한 것은 둘째 치고 우선 자신이 생각보다 썩 불편하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자칫하면 농이 온몸에 퍼질 수도 있다. 감나무 아래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려본 적 있는가. 지겨워 죽는다. 이런 썰렁한 아재 개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는 무위가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위는 현명하게 처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농부 한 명이 밭을 갈고 있었다. 저쪽에서 토끼 한 마리가 깡충깡충 뛰어온다. 발을 헛디디더니 나무 그루터기에 헤딩을 한다. 벌러덩 나동그라지더니 그만 기절하고 만다. 농부는 그날 토끼 한 마리를 횡재한다. 그다음 날부터 농부는 매일 그 나무 밑동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기다린다. 어디 또 멍청한 토끼 한 마리 안 나타나나. 결과는 뻔하다. 멍청한 토끼가 세상에 그렇게 많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제는 그 농부가 굶어 죽을 때까지 멍청한 토끼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불쌍한 점은 정작 멍청한 것이 자기 자신인 줄도 모른 채였다는 것이다. 약 2,500년 전 중국의 철학자 ‘한비자’에 나오는 ‘수주대토(守株待兎)’ 스토리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현실에 어디 또 있을까. 한 번 복권에 당첨됐다고 계속 복권을 사는 사람도 비슷한 것 아닌가. 수주대토는 무위의 올바른 사례가 아니다.





참으로 현명한 함장이 한 명 있었다. 이 함장은 그 배를 떠나는 병사에게 세 가지 질문을 꼭 던졌다. 첫째, 자네가 이 배에 있는 동안 좋았던 점이 무엇인가. 둘째, 자네가 이 배에 있으면서 싫었던 것은 무엇인가. 셋째, 자네가 함장이라면 어떻게 개선하겠는가. 이 퇴출면접(exit interview)에서는 웬만하면 진실을 말한다. 조직을 떠나는데 굳이 거짓말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 솔직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 질문을 왜 하겠는가. 그 병사에 대한 평가는 이미 다 끝났지만 자신의 리더십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 함장은 배에 새로 전입해오는 병사에게 세 가지 질문을 또 던진다. 첫째, 지난번 배에서 있었던 일 중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인가. 둘째, 지난번 배에서 있었던 경험 중 가장 싫었던 것은 무엇인가. 셋째, 자네가 함장이라면 어떻게 그걸 개선했겠는가. 자, 이 정도의 신입면접(enterance interview)과 퇴출면접을 합치면 가히 빅데이터가 그 함장에게 차곡차곡 쌓이지 않겠는가. 경쟁하는 동료 함장들에게 얻는 조언까지 합치면 엄청난 데이터가 누적된다. 참으로 현명한 무위 리더십의 사례다. 이는 군대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조직의 리더들이 한번 실천해볼 만하다.

팀장은 팀원이 하는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팀장이 할 일은 팀원과 팀원 사이의 업무 영역을 놓고 분쟁을 해결해주는 사람이다. 서로 그 일을 하겠다고 하거나 서로 안 하겠다고 할 때 바로 유권해석을 내려주는 것이다. 팀장과 팀장 사이에서 업무 영역을 놓고 비슷한 갈등이 빚어질 때 상급 리더가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자, 이거 다들 어린애들도 아니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서로 잘 협의해 일을 해결하세요.” 이 사람은 지금 자신이 직무 유기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팀 간의 업무 영역에 관한 갈등은 팀장들끼리 자율적으로 절대 해결하지 못한다. 자기 마음대로 상대에게 양보하고 돌아와 팀원들에게 “자, 우리가 좀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하기로 했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답은 “그럼 그 일은 팀장님이 직접 다 챙기시지요”일 것이 뻔하다. 이런 이유로 상급 리더가 결정해야 할 사항이다. 주의할 점은 갈등이 불거지는 초기에 빨리 해결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명령 중 최고의 명령은 리더가 명령하고 싶은 것을 부하가 스스로 하고 싶다고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최고의 리더는 회의 석상에서 시시콜콜 모든 것에 간섭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부하들이 직접 말할 때까지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이 무위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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