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아니라면서…‘금융 위기’급 처방= 정부에 따르면 내년 5월 6일까지 6개월간 유류세 15% 인하에 따른 국민 부담 감소 규모는 2조원 가량이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낸 건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단 두 번뿐이다.
‘재정만 낭비한다’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해 안에 단기 일자리 5만9,000개를 만들기로 했다. 여기에 지난해와 올해 연이은 일자리 추가경정예산편성에도 모자라 확대 재정 기조를 이어가는 모습은 정부가 지금을 ‘극약 처방’이 필요한 시기로 판단한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장 실장은 지난 4일 고위 당정청회의에서 “근거 없는 위기론은 국민 심리를 위축시켜 경제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며 소득주도성장을 앞세운 분배 중심 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5년마다 1%포인트…뚝뚝 떨어지는 성장률=경제성장률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 역시 우려스럽다. 장 실장은 한국은행이 올해 한국 성장률을 2.7%로 낮춰잡은데 대해 “잠재성장률(2.8~2.9%)과 부합하고 낮은 수준이 아니다”고 밝혔지만 산업 역동성은 떨어지고 저출산 고령화는 심화하는 추세에서 1%대 저성장 시대도 멀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김대중 정부 5.32%였던 성장률은 노무현 정부 4.48%, 이명박 정부 3.2% 등으로 5년마다 약 1%포인트씩 떨어지고 있다. 되돌릴 방법은 성장력 복원뿐이지만 자동차와 조선 등 주력산업의 쇠퇴 속에 공유경제나 원격의료 같은 신성장산업은 규제에 꽁꽁 묶여있다. 구조개혁은 한시가 바쁜데 청와대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車 협력사 절반 적자…실물 덮친 경기한파=청와대는 연말 고용 개선, 내년 중 경제 정책 효과가 나타난다고 전망하지만 현장은 하루하루를 버티기 어렵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올 1·4분기 1차 협력부품업체 89개사(상장사) 중 42개사(47.2%)가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자동차산업의 부진이 협력업체부터 덮치는 셈이다. 지난 9월 전 산업생산과 소매판매가 전달보다 각각 1.3%, 2.2% 감소한 상황에서 나마 의지하던 ‘수출 효자’ 반도체가 올 4·4분기부터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내년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고용은 ‘양’은 물론 ‘질’까지 무너지고 있다. 지난 8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는 661만4,0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6,000명 늘었고 공공부문 월 200만원 미만 취업자나 주 17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자도 증가세다.
◇美·中 갈등·신흥국 불안 곳곳 지뢰밭=밖으로는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변수인 세계 시장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청와대가 말하는 내년이 장밋빛이 아닌 잿빛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9%에서 3.7%로 하향 조정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내년 성장률을 각각 2.9%와 6.6%에서 2.5%, 6,2%로 내려 잡았다. 한 치 앞도 예상 못 하는 미·중 무역분쟁, 신흥국 불안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계 경기가 주저앉는데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만 좋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와대가 현재 경제상황을 보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정책의 변화가 없다면 내년 이후 개선은커녕 더 나빠지기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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