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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 레트로토피아:실패한 낙원의 귀환]다시 돌아, 차별과 불평등의 시대로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arte 펴냄

세계적 사회학자 바우만 유작서

소외된 자들의 좌절·분노서 오는

트럼프 부족주의·사이버 도피 등

암울한 네 가지 회귀현상 분석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구찌는 요즘 다소 촌스럽고 과해 보이는 레트로(retro·복고풍의)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워 전 세계 ‘명품족’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이 같은 레트로 마케팅 기류는 비단 명품 브랜드뿐 아니라 숱한 상품의 마케팅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공지능(AI) 등으로 대표되는 최첨단 기술이 지배할 것이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보이는 ‘레트로 전략’이 고개를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렌드는 시대의 거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미 우리 사회에는 ‘레트로’ 즉 ‘과거로의 회귀’ 성향이 만연했다는 것을 방증하며, 이를 사회 이슈로 확장해 본다면 트럼프식 우파 포퓰리즘, 인종 차별, 난민 문제 등이 ‘레트로’ ‘과거로의 회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와 이상향이던 ‘정치·경제적으로 민주적이고, 탈민족주의적인 방향’은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바로 ‘레트로’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타개한 폴란드 출신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작 ‘레트로토피아 : 실패한 낙원의 귀환’을 통해 △홉스로의 회귀? △부족으로의 회귀 △불평등으로의 회귀 △자궁으로의 회귀 등 4개의 ‘회귀’ 키워드로 우리 사회의 레트로 현상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레트로토피아’란 과거의 향수이며, 향수란 과거에 경험했던 무엇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우만이 말하는 ‘홉스로의 회귀?’는 음울하다. 자살 폭탄 테러를 비롯해 무차별적인 폭력이 자행되고 공공의 사회질서가 무너진 자리에 홉스가 주장했던 자연상태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새로운 개인 윤리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 그의 통찰은 씁쓸하지만 일리가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익과 관련 있는 사람들끼리 투쟁하는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상은 흡사 홉스로의 회귀로 비친다. 더 나아가 그는 “이러한 상태의 진짜 원인이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차별받아온 사람의 누적된 좌절과 분노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들의 폭력이 무서운 것은 대상을 특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으며, ‘분노하는 약자’를 더욱 혐오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고도 지적했다.

‘부족으로의 회귀’도 복고의 한 단면이다. 바우만은 양극화로 치닫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민족, 종교, 인종, 종교라는 울타리를 통해 구성원들끼리 똘똘 뭉치는 ‘새로운 부족주의’가 환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이민자 정책’을 ‘부족으로 회귀하고 있는 현상’의 한 예로 들었다. 실제로 국경을 강화해 장벽을 세우고 외국인을 미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트럼프의 정책은 ‘부족으로의 회귀 정책’이나 다름없다. 바우만은 “이러한 트럼프의 전략은 백인 빈곤층의 니즈와 맞아떨어지면서 미국 내 ‘트럼프식 우파 포퓰리즘’과 ‘상상된 공동체’인 민족주의가 득세하면서 미국 사회는 과거로 회귀고 있다”고 일갈했다.

바우만은 복고주의의 또 다른 양상으로 ‘불평등으로의 회귀’를 꼽으면서 “세계가 발전해온 과정은 불평등을 해소하는 과정이었지만, 이제는 이것이 방향성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거래 관계를 보장해주던 국가가 이러한 역할을 소홀해 졌고, 결과적으로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우만은 이러한 빈부격차는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면서 그 해법으로 ‘기본소득’의 유용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본소득이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자, 실질적으로 비용 대비 가장 커다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으로 본다”고 말했다.

바우만이 꼽은 ‘자궁으로의 회귀’에서는 청년세대의 개인주의가 읽힌다. 그는 “가장 많이 정신과 상담을 받고, 항우울제를 먹는 현재의 젊은 세대를 역사상 가장 우울한 세대라고 규정하며, 이들이 ‘자궁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사회적 계급의 사다리가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 등을 통해 무력감을 해소하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나르시시즘적인 태도가 발현되며, 이러한 발현은 자신만의 세상에 사는 ‘셀피’ ‘인스타그램’ 열풍 등의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아늑했던 원초적인 기억의 장소이자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도전받지 않는 안전한 장소인 어머니의 자궁으로 회귀해 자신만의 세계에 살아가고 있다”는 그의 설명엔 분명 설득력이 있다. 2만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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