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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조선, 철학의 왕국] 500년 문화유산 조선의 동력은 '철학'

■이경구 지음, 푸른역사 펴냄

이황·기대승 '사단칠정' 논쟁

오랑캐 인정여부다룬 호락논쟁 등

당대 달군 이론·학술토론 소개

철학 등한시하는 한국사회 성찰





“견문이 좁은 제가 박식한 그대에게 도움받은 것이 많습니다.” (퇴계 이황)

“평생을 우러르며 그리워했는데 함께 논하고 싶은 생각이 구름처럼 쌓이고 말았습니다.” (고봉 기대승)

16세기 조선의 성리학자인 이황과 기대승이 벌인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은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학술 토론 중 하나다. 두 사람은 8년 동안 주고받은 120통의 편지에서 인간의 선한 본성을 일컫는 ‘사단’과 사람의 여러 감정을 뜻하는 ‘칠정’의 상관관계를 놓고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갑론을박을 펼쳤다. 이 논쟁에서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각각 분리된 개념으로 파악하면서 수양을 통해 선한 본성을 가꾸고 감정을 제대로 조절해야 군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두 개념을 부분집합의 관계로 규정한 기대승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는 감정(칠정) 가운데 바르게 정제된 본성이 사단이라고 지적했다. 두 사람의 논쟁은 논리의 치열함뿐 아니라 26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는 존중과 배려를 바탕에 깔고 있기에 조선의 지성사(史)를 빛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조선시대 화가 조영석이 그린 ‘설중방우도’. 선비들이 고고한 분위기의 서재를 배경으로 지적 토론을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푸른역사




이경구 한림대학교의 한림과학원 부원장이 쓴 ‘조선, 철학의 왕국’은 500년 역사를 거치며 찬란한 문화유산을 꽃피운 조선 시대의 이론적 토대를 분석한다. 17~19세기의 정치·사상에 관심을 두고 꾸준한 연구 성과를 내오고 있는 저자는 책 제목 그대로 조선을 ‘철학의 왕국’으로 규정하면서 당대를 뜨겁게 달군 다양한 이론·학술 토론을 소개한다. 유학과 성리학·주자학의 개념적 토대와 성립 배경을 차근히 짚어주는 한편 인간의 심성과 감정을 묘파한 사단칠정 논쟁은 학술 토론을 넘어 정파의 이념까지 좌우하면서 현실 정치에 깊숙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이 책이 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해 애정 어린 경의를 표하는 토론은 ‘호락논쟁(湖洛論爭)’이다. 호락논쟁은 이황·기대승이 주도했던 사단칠정 논쟁, 서인·남인의 예송(禮訟) 논쟁과 더불어 조선의 3대 논쟁으로 불리지만 일반인에게는 유독 생소한 철학 토론이다. 호락논쟁은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됐다. ‘호락’은 충청도 지방에 살던 ‘호론’과 한양에 거주하던 ‘낙론’의 첫 글자를 딴 말이다. 당시 낙론은 인간과 동물·식물의 본성이 다를 바 없다는 ‘인물성동론’을 주장한 반면 호론은 인성과 물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인물성이론’을 제기했다. 저자는 당시 청나라로 대표되는 오랑캐에 대한 인정 여부와 관련해 중요한 철학적 토대를 제공했던 호락논쟁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통찰을 안겨준다고 말한다. 호락논쟁이 결국 타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면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 난민 등 무수한 타자들에게 둘러싸인 우리가 이 논쟁을 무심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책장을 찬찬히 넘기다 보면 조금만 논쟁이 길어져도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 없는 얘기는 집어치우라”고 타박하는 한국 사회의 잘못된 습관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된다. 저자는 경제력이 월등하지만 정신적인 성숙함을 갖추지 못한 나라는 ‘요란한 빈 수레’처럼 공허할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조선은 국왕부터 사대부까지 모두가 종교인이자 철학자로서 공감하며 움직인 나라였다. 종교·사상·철학·정치·학문·교육은 유학의 이상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15세기 이후의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500년을 지속한 생명력은 그렇게 마련됐다.” 2만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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