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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평화' 非종교적 병역거부도 무죄 가능성↑… 징병제 근간 흔들까

'강제징집 자체에 반대' 신념 사건 대법서 심리

1·2심 유죄 선고했지만 무죄로 뒤집힐 가능성

일반적 양심, 종교보다 검증 어려워 악용 우려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대체복무제 안 수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여호와의증인’ 등 종교적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을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 낸 가운데 비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도 무더기로 무죄 판단을 받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징병제 자체를 문제 삼는 일반적 신념이나 전쟁·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적 양심 등이 이에 해당한다.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교적 신념뿐 아니라 양심의 자유 전반에 대해 판결한 만큼 이들 대부분도 무죄로 구제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각종 양심을 모두 병역거부 사유로 인정할 경우 징병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비종교적 병역거부도 대법원 무죄 판결 가능성 높아=10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해 9월부터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곽모(22)씨의 상고심 사건을 심리 중이다. 곽씨는 지난 2016년 10월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일로부터 사흘이 지날 때까지 입대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곽씨는 병역거부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여호와의증인 신도는 아니다. 그는 종교와 무관하게 ‘강제징집 제도 자체가 위헌’이라는 신념을 가진 남성이다. 곽씨는 강제징집 제도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않는 급여를 지급하고 개인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제도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모병제라는 대안이 있는데도 징병제를 고집하면서 대체복무제라는 선택권도 주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1·2심은 모두 곽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병역의 의무는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이라며 곽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도주우려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재판 대상은 여호와의증인 신도였지만 법리는 곽씨와 같은 비종교적 병역거부자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죄 취지로 다수 의견을 낸 8명의 대법관은 “헌법 제19조에서 말하는 양심은 일상에서 쓰이는 착한 마음이나 올바른 생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추구하는 도덕적 마음가짐”이라며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규정했다. 우리나라의 징집제도가 잘못됐다는 곽씨의 양심이 진실하다는 것만 검증된다면 얼마든지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법원 안팎에서도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곽씨의 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인생에 오점을 남길 수 있는 실형의 위험을 무릅쓰고 병역을 거부한 만큼 양심의 절박성을 대법원에서도 인정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대법원도 비종교적 병역거부 사건을 따로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비종교적 병역거부 건은 총 14건으로 나머지 사건도 곽씨와 함께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은 종교뿐 아니라 양심의 자유 전반에 대해 판단한 것”이라며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이 난 비종교적 병역거부 사건도 상고심에서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병역 거부자들이 교정시설 36개월 복무 안에 반대하는 감옥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각종 양심 인정하면 대체복무제 악용 우려=문제는 병역거부에 관한 여러 종류의 양심을 인정할 경우 입영대상자들이 대체복무제를 악용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종교 시설에 몸담았던 사실 등 증빙이 어느 정도 가능한 종교적 양심과 달리 일반적 양심은 검증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나온다. 대체복무제의 강도가 일반 병역 의무보다 강하지 않을 경우 징병 시스템에 혼란만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헌법을 무시한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는 절대 받을 수 없다는 신념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병역거부 사유로 분류될 수 있다. 이 같은 신념은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신념이다. 극단적으로는 어릴 때부터 군대에 가기 싫었다는 단순한 고집이 징집제를 거부하는 신념으로 둔갑할 수 있고 주변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평화적 양심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군 입대 후 집단생활 적응 문제로 자해를 시도하거나 정신병을 호소할 만한 사람들이 ‘인격적 파멸’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복무에 몰릴 경우 이를 어떻게 판단할 지도 관건이다. 병역 자원이 줄어 이미 현역병 입영률이 90%를 넘은 데다 저출산 때문에 앞으로는 현역률이 100%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점도 고려 사항으로 지적됐다.

이에 대해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 8명은 병역거부자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을 살피는 것으로 양심을 검증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를 일일이 걸러내는 데는 검찰수사력와 행정력 등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게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의 경우 현재 대법원 판결문 분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검찰청 차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기준이 확정되지 않다 보니 일선 지방검찰청이 관련 사건에 대한 선고심을 미뤄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앞으로 어떤 대체복무제를 마련하는지가 징병제 안정성 유지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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