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노사정 대화에 ‘채용비리’ 의혹으로 코너에 몰린 노동계가 거리투쟁을 통한 ‘단계별 압박’을 본격화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연말에 ‘릴레이 투쟁’에 나선 것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두고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다 탄력근로제 확대를 둘러싼 노정 갈등이 커지면서 노동계가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오후 광화문에서 ‘2018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는 예상보다 1만 명 많은 총 7만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4만 명)이 참석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노동관련 집회로는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 노동계로서는 일단 ‘세 과시’에 성공한 셈이다.
이날 집회를 시작으로 양대노총의 ‘거리 압박’은 내달 1일까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오는 17일에는 한국노총이 국회 앞에서 ‘2018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민주노총은 오는 21일 총파업에 나서며 다음 달 1일에는 ‘촛불항쟁 2주년’을 기념, 각종 시민단체와 연대해 대규모 민중대회를 열 예정이다.
양대 노총이 강경노선을 택한 것은 최근 노사정 대화에서 노조에 대한 압박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후 재계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 3개월에서 6개월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탄력근로제는 단위 기간 내 특정 근로일의 업무 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근로일의 시간을 줄여 주 평균 시간을 52시간 내로 맞추는 제도로 재계에서는 건설·유화·조선 등은 특정 기간에 일감이 몰려 탄력근로제를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양대 노총은 이에 대해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사실상의 근로시간 연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ILO 핵심협약 비준도 진척이 없다. 양대노총은 ILO 핵심 협약비준이 문 대통령의 공약인 만큼 근로기준법 등 관련법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교섭 창구 단일화 △노조 전임자에 대한 타임오프제 인정 등 그동안 쌓아놓은 노사의 틀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공개적으로 노조를 압박하자 양대 노총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는 눈치다.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화 과정에 민주노총 산하의 노조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나오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당은 오는 20일까지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에 대해 노사가 합의하지 못한다면 국회가 관련법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주말 시위를 ‘투쟁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대 정부 압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자본가 청부입법인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의 국회 일방 처리를 강력 저지할 것”이라며 “우리의 11월 총파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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