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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콩피에뉴 숲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430년 5월 전략적 요충지인 콩피에뉴가 영국-부르고뉴 연합군의 포위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잔 다르크가 프랑스군을 이끌고 달려갔다. 선두에 서서 적군을 쫓아가던 잔 다르크,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르고뉴군의 본대 깊숙이 들어가고 말았다. 위기를 직감한 잔 다르크는 결사적으로 빠져나오려 했으나 말에서 떨어져 포로의 신세가 된다.

부르고뉴군은 영국에 거금을 받고 잔 다르크를 팔아넘겼고 영국은 그녀를 마녀로 몰아 종교재판에 회부했다. 일곱 번의 재판 끝에 잔 다르크는 화형에 처해지고 만다. 콩피에뉴가 프랑스 성녀의 마지막 전장이 된 셈이다. 잔 다르크의 비극이 서려 있는 콩피에뉴는 1·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총사령부가 있었던 인연으로 1918년 11월11일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는 정전협정 서명식이 이곳에서 열렸다. 정확히는 시내를 관통하는 광활한 숲에 있던 페르디낭 포슈 연합군사령관의 전용 객차 안에서 행사가 진행됐다.

2차대전 때는 프랑스를 점령한 히틀러 독일 총통이 1940년 6월22일 같은 장소에서 프랑스의 항복서명을 받았다. 그것도 파리에 보존 중이던 1차대전 당시 객차를 기어코 콩피에뉴 숲까지 옮겨왔을 정도로 히틀러의 보복심리는 집요했다. 굴욕을 모욕으로 갚은 것이다. 이렇듯 전쟁과 관련된 슬픈 역사가 많은 콩피에뉴는 9세기에 왕립수도원이 들어서고 샤를 5세가 궁전을 세우면서 본격적인 도시 기능이 시작됐다.



특히 도시 전체를 감싸는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왕과 왕족들이 사냥터로 애용했다고 한다. 1만5,000㏊에 달하는 숲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수목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길을 따라 난 산책로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펼쳐진다. 수도 파리에서 80㎞ 정도 거리로 쉽게 오갈 수 있어 현재는 파리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1차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콩피에뉴 숲을 방문했다는 소식이다. 독일 정상이 이곳을 찾은 것은 2차대전 이후 처음. 메르켈 총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전사자들을 추모했다고 한다. 양국 모두 치욕의 흔적이 있는 콩피에뉴 숲에서 두 정상이 공유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쟁의 참극을 기억해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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