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판매 둔화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노무라 인스티넷)
애플이 최근 4·4분기 아이폰의 목표 판매대수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12일(현지시간)에는 아이폰 주요 부품업체들이 대형 고객사의 납품 축소 요청을 이유로 실적 전망치를 대폭 내리자 시장에서 아이폰 판매 위축에 대한 우려가 재부각되고 있다. 애플이 폭스콘 등에서 신제품 아이폰X의 생산라인을 축소했다는 소문이 돈 지 일주일 만에 다른 부품업체들 사이에서도 애플발 공포가 번지자 증권 업계도 잇달아 아이폰 판매량 전망치를 낮추는 등 애플의 위기설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애플은 5.04% 급락한 194달러선으로 마감하면서 200달러 밑으로 내려앉았다. 애플 여파는 기술주 전반으로 퍼져 나스닥지수는 2.73% 떨어진 7,200.87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애플의 주가가 급락한 것은 아이폰의 3D 센서 부품업체인 루멘텀홀딩스가 2019년 회계연도 하반기 실적 전망치를 대폭 낮추면서 아이폰 수요 부진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루멘텀은 특정 기업을 언급하지 않고 “대형 고객사가 납품을 줄이라고 요청했다”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애플로 확신하는 분위기다. 웰스파고는 이날 투자자들에게 “루멘텀의 조정된 실적 전망치는 30%가량의 애플 주문 감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아이폰에 액정표시장치(LCD)를 공급하는 재팬디스플레이도 스마트폰 시장 둔화를 언급하며 올해 실적 전망치를 내렸다. 엘라자르캐피털의 하임 시겔 애널리스트는 로이터통신에 “많은 부품업체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최대 고객사 때문에 실적 수치를 하향 조정했는데 이것은 애플”이라면서 “애플이 실적 전망에 신중해졌고 이것이 부품업체에 타격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이달 초 애플이 스마트폰 조립업체인 대만 폭스콘과 페가트론에 아이폰XR의 추가 생산설비 계획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해 부진한 아이폰 수요를 짐작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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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판매 둔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증권사들도 잇달아 아이폰에 대해 잿빛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애플을 담당하는 밍치궈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올 4·4분기부터 내년 3·4분기 사이 아이폰XR 출하량 전망치를 기존 1억대에서 7,000만대로 대폭 낮춰 잡았다. 지난달 판매 호조를 예상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지 불과 한 달 만이다. 밍 연구원은 무역전쟁으로 얼어붙은 중국 시장의 소비심리와 중국 화웨이 신제품의 경쟁력 향상 등을 아이폰XR 판매량 하향 조정의 이유로 들었다. JP모건도 아이폰XR에 대한 주문 부진을 지적하며 애플의 목표주가를 4달러 내린 270달러로 제시했다. 이달 들어 두 번째 하향 조정이다. 애플에 더해 아이폰 부품업체에 대한 암울한 전망도 나왔다. 씨티그룹은 아이폰 판매 둔화 전망을 근거로 반도체 칩 업체인 스카이웍스의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내리고 목표주가도 10%가량 대폭 하향 조정했다.
다만 일각에서 아이폰 수요 감소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CNBC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위축되고 아이폰 업그레이드 주기가 길어지면서 애플은 아이폰 수요에 대한 우려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됐다”며 과도한 우려를 경계했다. 실제 지난 2013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아이폰 공급망은 매우 복잡해 한 공급업체가 전망을 낮춘다고 해서 반드시 아이폰 수요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애플의 매출과 이익성장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도 긍정적인 징후라고 CNBC는 덧붙였다. 고가의 아이폰 출시로 평균판매단가가 올라가고 있어 전체 실적을 견인하고 있고 서비스 매출 등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한편 애플의 판매 둔화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반사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애플의 경우 혁신 부재와 가격전략 실패가 시장에서 두드러지면서 다른 제조사들보다 급격한 판매 위축 현상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애플은 9월 아이폰XS·XS 맥스·XR 등 신형 스마트폰 3종을 출시했지만 시장에서는 실망감을 표출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카메라 기능이 향상되고 화면 크기가 커진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혁신요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국내 제조업체 관계자는 “애플의 혁신성 부재가 판매 부진의 원인으로 보이는데 국내 스마트폰 업계는 절호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며 “애플과 달리 폴더블폰 등 혁신상품을 준비 중인 만큼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민주·강동효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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