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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금융을 이렇게 홀대해도 되나

김홍길 금융부장

日은 한국식 영업 부러워하는데

국내선 "이자장사 한다" 색안경

당국은 육성보다 정책수단 여겨

금융산업 쇠락않게 시선 바꿔야





일본의 한 유명 언론매체에 동남아시아 국가에 진출해 급성장하는 한국 은행의 스토리가 실린 적이 있다. 한 시중 은행 임원이 사석에서 알려줘 뒤늦게 알게 됐는데 내용은 이렇다.

한국의 대형 은행들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뒤늦게 진출했는데 이미 오래전에 터를 잡고 있던 일본 등 선진국 은행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됐다는 것이다. 한국의 은행들이 작은 자산 규모로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낸 것은 거래를 트려고 현지 기업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파는 영업’ 형태 때문이라는 분석이 눈에 띈다. 한마디로 한국의 은행은 땀나게 뛰는데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일본 은행의 온실 속 화초 같은 영업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은행이 이자 장사로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는 비판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한술 더 떠 정치권이나 금융관료조차 금융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만능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증시가 폭락하면 증시안정기금을 조성하라고 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의 부담이 커졌다며 카드수수료를 내렸는데 또 내린다고 한다. 대출시장을 1~2개 은행이 독점하는 것도 아니고 무한 경쟁을 펼치는데도 가산금리나 대출금리를 통제하려고 드는 것이 금융당국의 수준이다.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고 지적하면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궁색한 변명뿐이다.

생산적 금융도 관치시대가 통하던 발상에 가깝다. 금융이 경제 활성화에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쉽게 얘기하지만 실상 금융은 선행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이 생기면 여기에 대출해주며 돈을 버는 후행적인 역할에 머물 뿐이다. 시혜적으로 돈을 퍼주는 데가 은행이 아니라 철저한 이익을 따져 대출해줄 기업을 찾는 것이 속성이라는 얘기다. 막힌 규제를 확 풀어 연관산업이 만들어지면 은행들이 그때 가서 대출을 해주는 것이지 새로운 산업을 만들기 위해 은행이 선제적으로 자금을 풀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무지에 가깝다.



은행은 양질의 대출처가 있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경쟁을 벌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몸을 사리는 것이 본능이다. 그런 은행에 정치권과 관료들은 이구동성으로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는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규제를 대담하게 풀고 관련 산업이 만들어지면 은행들이 알아서 대출하는데 지금의 정책논의는 거꾸로다. 은행이 돈을 많이 번다고 욕하지만 벌 수 있을 때 벌게 해줘야 범퍼(완충) 역할도 하고 주머니 사정이 두둑해야 ‘우산(대출)’을 뺏는 일도 줄어들게 되는 이치다. 특히나 주주가 있는, 그것도 70~80%가 외국인 주주인데 ‘이익을 적당히 내라’는 것은 경영 간섭을 떠나 개입이다. 외국인 주주들이 한국 은행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떠나기라도 하면 그때는 누가 책임을 지나. 투자자가 당국을 상대로 책임소송이라도 내야 할 판이다.

수십 년 전 아시아 금융 허브를 표방하며 금융산업 육성을 화두로 꺼낸 대통령이 있었다. 다들 순진하고 현실성 없는 목표라고 치부했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조차 듣기 어려울 정도다. 그 사이 금융 중심지를 투포트 전략으로 육성한다며 서울과 부산으로 찢어놓더니 지방혁신을 한답시고 60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서울에서 200㎞나 떨어진 전북으로 내려보내 외신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꿈 같은 얘기라도 좋으니 ‘금융산업’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자조가 나온다. 일부에서는 ‘금융홀대’를 넘어 ‘금융무지’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1917년 영국 여행가 이저벨라 비숍은 조선땅을 밟았다 귀국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여행기를 썼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인은 밖에 나가면 더 잘사는 민족”이라고 결론 내렸다. 안에서는 안되는 이유로 그는 ‘관료들의 무능’을 꼽았다.

우리는 관료의 무능함에다 금융을 홀대까지 하고 있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은행업을 천대하거나 박대해 쇠락의 길로 접어든 나라들이 여럿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금융을 이렇게 홀대하고 있는가. /wha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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