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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 붕괴의 다섯 단계]인간성마저 사라진다면...살아도 그곳이 지옥 아닐까

■드미트리 오를로프 지음, 궁리 펴냄

세계화·화폐경제로 촉발된 위기

금융·상업·정치·사회·문화붕괴시켜

인간에 대한 믿음 무너지기 전에

공동체의식 회복하려는 노력해야

끔찍한 문명의 종말 막을 수 있어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프라임 모기지 등에 비하면 비교적 신용도가 낮은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부동산담보대출로 상대적인 의미에서 비우량 부동산담보대출) 사태에서 시작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경제를 강타했다. 이후 월가 등 국제 금융 시장의 복잡한 금융상품의 문제점은 더욱 세계 경제를 험난하게 만들었다. 한국은 앞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통해 글로벌 경제가 우리에게 피부로 와 닿는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물론 1990년대 역시 사회 경제 문화가 세계화된 시대였지만, 세계화가 만들어낼 그늘에 대해서는 예측하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그때 IMF는 노동시장을 비롯해 우리 산업이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인터넷 보안까지 다양한 분야의 엔지니어로서 활동하며 소련의 붕괴와 미국 자본주의의 구석구석을 탐색해온 드미트리 오를로프가 쓴 ‘붕괴의 다섯 단계’는 세계화와 화폐경제가 어떻게 한 국가를 비롯해 전 세계를 붕괴하는지에 대해서 다섯 단계로 풀어냈다. “세계를 단일 시장으로 만들어는 무역 자유화 속에서 경제 부문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역할이 약화됐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붕괴의 요인이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적 실체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의 초국적 기업과 초국적 금융기관”이라고 진단했다.

일단 저자는 붕괴 과정을 1단계 금융붕괴, 2단계 상업 붕괴, 3단계 정치 붕괴, 4단계 사회 붕괴, 5단계 문화 붕괴로 정의했다.



저자에 따르면 금융이 붕괴할 때 경제 전반에 걸쳐 ‘평소와 같은 경기’라는 믿음이 사라진다. 금융 자산이 보장된다는 믿음이 사라지고, 저축은 휴지 조각이 되며 급기야 자본 접근성이 막힌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가치가 하락해 벌어졌던 일들을 상기하면 금융자산의 붕괴가 낳을 현상과 이것이 미치는 영향 역시 짐작이 갈 것이다.

상업 붕괴 때는 ‘시장에 가면 다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다. 화폐는 가치가 절하되거나 희소한 상태가 되고, 각종 상품 사재기가 벌어지며, 수입에서 소매업까지 이어지는 연쇄의 고리가 끊어지며, 기초 생필품의 품귀현상이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교역에 기초해 안정된 정상상태를 취하고 있는 경제가 무너질 때 이야기다. 또 정치가 붕괴되면 ‘정부가 당신을 돌봐 준다’라는 믿음이 사라지고, 연이어 ‘이웃이 당신을 돌봐준다’라는 믿음이 사라진 ‘사회 붕괴’,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문화 붕괴’가 뒤따른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이 모든 붕괴 가운데 가장 우려가 큰 것으로 저자는 ‘문화 붕괴’를 꼽았다. 금융과 정치의 붕괴에 비해 문화의 붕괴에서는 인간성 자체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인류학자 콜린 턴불의 저서 ‘산(山) 사람들’에 등장하는 윤리도 감정도 사회도 사라진 이크족을 꼽았다. 오랫동안 수렵 채집을 하며 살던 이크족에게 영국 식민정부와 우간다에서 정착 생활을 명령하고, 방랑생활을 하던 부족이 땅에 묶이면서 재앙이 찾아온다. 이들에게 기근이 닥치고 생존이 어려워지자 이크족에게는 생존만이 목적인 삶이 찾아오고, 사회와 가족이 해체되고 노인과 아이들이 ‘짐’이 되는 극단의 상황이 펼쳐진다.

저자는 이크족과 같은 참상이 앞으로 우리에게도 펼쳐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생존 원리만 살아남는 극단적인 붕괴 상황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혹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족과 같은 기본 단위의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굴 모르는 사람들과 이뤄지는 큰 단위의 금융, 경제, 정치 활동이 아니라, 작은 단위에서 얼굴 맞대고 이뤄지는 평등하고 수평적인 연대가 공동체 의식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순진무구한 학자의 주장처럼 들린다. 그러나 세계화된 사회에서 파편화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이웃과 공동체라는 개념을 추상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설득력을 지닌다. 연대의식이란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게 더욱 생기는 것이 아닌가. 결국 저자가 회복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추상적인 화폐 개념이 아닌 실물, 추상적인 가족과 이웃이라는 개념이 아닌 얼굴 맞대고 부딪히는 ‘실제 가족과 이웃 그리고 공동체’일 것이다.

책은 494페이지에 달할 만큼 두껍고 방대하며, 화폐, 금융 등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이야기함에도 각 장마다 아이슬란드, 러시아 마피아, 중앙아시아의 파슈툰족, 집시족 등을 사례로 들어 이해하기 쉽게 구성돼 있다. 특히 화폐경제가 아닌 실물경제로의 회귀에를 주장하는 대목은 화폐 통용 이전 시대의 물물교환 경제 상황이 눈앞에 ‘실사’처럼 생생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2만5,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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