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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에세이] 치매가 불편하지 않은 나라

변선정 중앙치매센터 부센터장

  • 2018-12-02 16:47:26
  • 사외칼럼
[건강 에세이] 치매가 불편하지 않은 나라

“치매만은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르신들이 노상 하시는 걱정이다. 늘그막에 자녀들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우신 모양이다. 지난 2014년 중앙치매센터와 한국갤럽이 진행한 치매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뿐 아니라 50대 중장년층에서도 치매가 가장 두려운 질환으로 꼽혔다. 올해 우리나라 80세 이상 노인 4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데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선 지 오래니 과한 걱정은 아니다. 결혼한 50대라면 80대 양가 부모 네 분 중 한 분이 치매를 앓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니 노인들만의 걱정거리도 아니다. 결국 치매는 가깝게는 내 부모님 조금 멀리 보면 나의 일이다. 오는 2050년에는 치매환자가 지금보다 4배 늘어나 30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치매 국가책임제’를 내걸고 나라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준 것이 우선 반갑다.

그런데 이런 걱정들에는 ‘나이가 들면 치매는 막을 수 없는 병’ ‘걸리면 치료방법이 없는 병’ ‘본인도 존엄을 잃고, 가족은 풍비박산 나는 병’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듯하다. 너무 두렵다 보니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느낌만 있어도 ‘혹시 치매로 진단되는 것 아니냐’ 하며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분들도 있다.

치매는 막을 수도, 치료할 수도 없는 병일까. 치매에 걸리면 당사자와 가족은 항상 고통받고 갈등해야만 할까.

상당수의 치매는 예방할 수 있고 치매 진단을 받은 뒤라도 적절한 관리·치료를 통해 증상을 줄이거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치매 다음으로 흔한 혈관성 치매는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잘 관리하면 발병위험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실제로 2016년 국내 혈관성 치매 환자는 2008년의 3분의1로 줄었다. 혈관성 치매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치매도 건강한 생활습관을 통해 예방이 가능하다. 중앙치매센터에서 내놓은 ‘치매예방 333 수칙’에 주목해주면 좋겠다. 각각 세 가지를 즐기고 피하고 챙기라는 것이다.

3권(勸)은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걷기 등 유산소운동을 주 3회·30분 이상씩 꾸준히 하며 책·신문 읽기 등을 통해 머리를 활발하게 쓰라는 것이다. 3금(禁)은 과음·흡연·머리 외상을 피하고 3행(行)은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관리, 우울증 치료, 치매 조기검진을 빠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치매 발병은 70대 이상 노인에서 흔하지만 뇌의 변화는 진단 20년 전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늦어도 중년부터는 보험이라 생각하고 이런 예방 습관을 꼬박꼬박 챙길 필요가 있다.

다만 3권·3금·3행을 실천하더라도 모든 치매를 예방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치매에 걸려도 안심하고 가족과 함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준비해두는 것일테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주민의 10%가 치매 서포터스였던 미나미산리쿠 마을에서는 단 한 명의 치매 노인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치매 서포터스 고등학생들이 치매 노인의 대피를 도왔던 덕분이다. 이런 재해에서 가장 살아남기 어려운 사람들이 치매환자임을 생각하면 기적이라 할 만하다.

혹시 내가 주변에서 치매환자를 만난 적이 없다면 종종 그들이 함께 살고 있음을 잊었거나 관심이 없어 알아보지 못한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년 1만건에 육박하는 치매환자 실종도, 다른 노인의 10배에 이르는 학대 위험도 내 주변에 치매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관심을 가진다면 줄일 수 있다. 치매가 있어도 살기 불편하지 않은 나라를 만드는 것은 젊어서부터 치매예방 습관을 실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한 든든한 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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